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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해제 대전·대구·마산 등으로 전달하다가 체포되어 1920년 12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정치범처벌령, 출판법과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언도받았다. 85 2) 경기도 경기도 지역은 3·1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것은 만세운동이 처음 일어난 서울과 지역적으로 인접하여 있고, 고종의 인산일에 참여한 사람들이 많았으며, 서울 통학생들이 많았고, 『매일신보』(每日申報) 둥 신문을 구독하는 식자층이 많았던 것 등이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86 「조선소요사건총계일람표」(朝鮮騷擾事件總計一覽表)에 의하면, 3·1운동이 일어난 618개 지역 중 경기도가 143개 지역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고, 만세운동 848회 중 225회가 경기도에서 일어났다. 또한 만세운동 참여자 587,641명 중 169,300명이 경기도인이었고, 시위군중에 의해 일제경찰 2명이 타살된 곳이 경기도였다. 87 이 자료총서에 수록한, 경기도에서 만세운동을 펼친 여성은 강화의 조인애(曺仁愛), 개성의 권애라(權愛羅)·신관빈 (申寬彬)·심영식(沈永植)·어윤희(魚允姬), 김포의 이살눔, 파주의 임명애(林明愛)이다. (1) 강화군(江華郡) 강화의 3·1운동은 88 1919년 3월 18일 읍내 장터에서 대규모 시위 이후 4월 중순까지 거의 한 달간에 걸쳐 강화군 전역에서 면·리 단위로 전개되었다. 강화읍내 시위는 경남 진주(晋州)의 경우와 더불어 규모 면에서 전국에서 수위를 다툴 만큼 대단히 컸다. 그리고 감리교와 성공회 등의 교회신자들이 강화군 전역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운동을 주도한 대표적인 세력이었다는 점도 강화군 만세시위의 특징이다. 강화에서의 만세시위는 감리교신자들인 염성오(廉成五)·유봉진(劉鳳鎭)·장윤백(張允 85 「판결문」(경성지방법원, 1920.12.21) ; 『조선일보』 1920.12.17 ; 『독립신문』 1921.1.27, 「9지사의 판결」 ;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 운동사자료집』 5, 독립유공자사업기금운용위원회, 1972, 258∼261쪽 ;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47, 국사편찬 위원회, 2001, 113∼115쪽. 86 박환, 『(경기지역) 3·1독립운동사』, 선인, 2007, 47쪽. 87 박헌옥, 「서평 ‘경기지역 3·1독립운동사’를 읽고」, 『북한』 423, 북한연구소, 2007, 13쪽. 88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2, 독립유공자사업기금운용위원회, 1979, 156~158쪽 ; 김정인·이정은, 『국내 3·1운동 I - 중부·북부』,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34~3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