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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해제 순사들은 내 기어가는 꼴을 보고 웃으며 좋아한다. 이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기도를 올렸다. 이렇게 5월이 지난 후 서대문 감옥으로 압송되어 조그만 감방으로 들어갔다. 수일 후 나는 심문도 없이 그대로 방출되었다. 55 1892년 내한하여 생활한 감리교 여선교사 노블(Noble)은 집에서 유인물이 발견되어 수감되었던 전도부인 이 헤스터가 그녀를 방문하여 증언한 바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그들은 그녀를 종로결찰서로 끌고 갔고, 그녀는 어느 방으로 들어가 일본인 경찰과 책상을 사이에 놓고 마주 앉게 되었다. (중략) 그녀가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기다란 막대기로 그녀의 머리와 귀를 몇 차례 때리더니 다시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고, 그녀는 매를 맞을까봐 얼른 대답을 했다. (중략) 경찰은 그녀에게 다가와서 그녀의 머리를 막대기로 때렸고 막대기는 세 동강으로 부러졌다. 그러자 경찰은 주머니에서 밧줄을 꺼내면서 자신들이 묻는 것에 자백을 하지 않으면 그 밧줄을 세게 휘둘러 그녀를 때리겠다고 했다. 감옥에 2,000여 명이 갇혀 있었는데 경찰은 그들에게 그녀가 선동유인물을 배포했다고 말했고, 이에 그녀가 그 사실을 증명할 이를 데려오라고 되받았다. 그러자 경찰은 그녀의 머리와 얼굴을 손바닥으로 때렸다. 경찰은 그녀를 감방으로 끌고 갔고, 흙바닥인 그 감방에 그녀를 집어넣겠다고 겁을 주었다. 여러 개의 감방에 사람들이 수감되어 있었는데, 그들 역시 고문 당했음을 알 수 있었다. 경찰은 그녀를 다시 심문실로 데리고 가서는, 그녀를 조금 전에 본 것 같은 감방에 가두겠다고 다시 위협했다. 구타로 인한 고통으로 녹초가 된 그녀는 감방에 들어가면 몸이라도 눕힐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자신을 어서 빨리 감방에 넣어달라고 가정했다. (중략) 더 이상 증거를 찾아낼 수 없었던지라 (중략) 그녀를 풀어주었다.” 56 어윤희는 경성지방법원에 끌려가 심문을 받는 자리에서도 검사에게 당당히 맞서 일침을 가했다고 한다. 즉 경찰에서 조사를 마치고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압송되어 재심문을 받았는데 그 때 “저 앙큼한 년을 봐라. 다 알고 있는데도 거짓말을 하는구나. 저 년을 발가벗겨라” 하고 검사가 호통을 치자 “내 몸에 누가 손을 대느냐? 발가벗은 내 몸뚱이를 보기가 그렇게 소원이거든 내 손으로 옷을 벗으리다” 하고는 옷을 훌훌 벗은 후 “자 실컷 보시오. 당신 어머니도 나같을 거고 당신 부인도 나와 같을 거요” 하고 소리를 55 정요섭, 「한국여성의 민족운동에 관한 연구 : 3·1운동을 중심으로」, 『아세아여성연구』 10, 숙대출판부, 1971, 327쪽. 56 매티 월콕스 노블 지음, 이양준 옮김, 『노블일지 : 1892~1934』, 이마고, 2010, 234~23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