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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여성독립운동사 자료총서 (3·1운동 편) 집에서 끌려나와 전신주에 묶인 채로 대중이 보는 앞에서 매를 맞았다. 아낙네들은 폭행을 당하고 비인도적인 악형을 겪었다.” 48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의하면, 평양에서 체포·수감된 여학생에게 일제는 달군 쇠꼬챙이로 음문을 지지며 사내가 몇이냐고 묻는 등 갖은 악형과 폭언 등으로 욕을 보였다. 49 수감되었다가 석방된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감옥에서 일본인들이 한국여성들에게 통상적으로 행한 만행은 다음과 같았다. ① 여성들은 끈으로 머리채를 묶어 천정에 매달아 놓고, 엄지발가락이 겨우 땅에 닿을 듯 말 듯 하게 하였다. ② 여성들을 날마다 한 차례씩 감옥 마당에 나체로 세워놓고 헌병들이 한 시간씩 혹독한 매질을 하였다. ③ 한인 여성이 수감되면 반드시 발가벗기고 심문을 하는데, 여학생이 판결을 받을 때에는 틀림없이 이미 강간·폭행을 당한 후였다. ④ 경찰서에 잡혀온 여학생에게는 일본순사가 먼저 강간을 하고 나서 ‘네가 처녀냐? 정녀(貞女)냐?’ 라고 묻고, 대답이 없으면 갑자기 주먹으로 여자의 배를 때렸다. ⑤ 여성을 알몸으로 두세 시간 거울 앞에 세워놓고 조금이라도 몸을 굽히면 심하게 때렸다. ⑥ 여성의 옷을 다 벗겨 반듯이 눕히고 겨드랑이 털과 음모를 뽑기도 하고, 고약을 녹여 여자 음부에 붙였다가 식어 굳어지면 이를 갑자기 잡아 떼어 그 음모가 모두 빠지도록 하였다. 50 1919년 3월 하순에 출옥한 31명의 서울 여학생들은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처음 수감되어서는 무수하게 매를 맞고, 그 후에는 발가벗겨져 알몸으로 손발이 묶인 채 마굿간에 버려졌다. 밤은 길고 날씨는 혹독한데 지푸라기 하나도 몸에 걸치지 못했다. 왜놈들은 예쁜 여학생 몇 명을 몰래 잡아가서 윤간하고는 새벽에 다시 끌고 왔다. 눈은 복숭아같이 퉁퉁 붓고 사지는 옭아 맨 흔적이 남아 있었다. 신문할 때에는 십자가를 늘어놓고 말하기를 ‘너희들은 신자이므로 마땅히 십자가의 고난을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또 그들은 48 C.W. 켄달 지음, 신복룡 역주, 『한국독립운동의 진상』, 집문당, 1999, 51쪽. 49 박은식 지음, 김도형 옮김,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소명출판, 2008, 250쪽. 50 박은식 지음, 김도형 옮김, 앞의 책, 260~26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