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page

222 여성독립운동사 자료총서 (3·1운동 편) 기 때문에 33명이 전부가 아니고, 이 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수감되었음을 타 자료를 통해 확 인되고 있다. 판결문 등을 통해 확인된 인물들에 대해서는 위 편에서 살펴보았으므로 본 장 에서는 수형기록카드가 발견된 서대문형무소 수감 인물에 대해서만 살펴보고자 한다. 운동 계열별로 살펴보면 우선 각지에서 3·1운동을 펼치다가 수감되었던 어윤희(魚允嬉) 와 신관빈(申寬彬, 개성), 유관순(柳寬順, 천안 병천), 임명애(林明愛, 파주), 박정선(朴貞善) 과 이신애(李信愛, 서울 안국동)가 있다. 다음으로 세브란스 병원 간호사 노순경(盧順敬), 김 순호(金順好), 이신도(李信道) 3명의 서울 종묘 앞 만세운동 주동사건이 있다. 마지막으로 1920년 3·1운동 1주년 기념 투쟁을 전개하였던 이수희, 김경화 등 24명의 배화여학교 여학 생 만세운동이 있다. 각 인물의 수형기록카드에 기록된 세부 정보는 다음 〈표 17〉과 같다. 1) 각지의 만세운동 3·1운동으로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여성 독립운동가 가운데 수형기록카드가 남아 있는 인물 중 각 지역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인물로 어윤희와 신관빈, 임명애, 유관순, 박정 신과 이신애가 있다. 어윤희와 신관빈은 개성 지역 3·1운동을 주도하다가 피체되었다. 어윤희는 기독교 남감 리교 전도사로서, 1919년 2월 26일 개성 시내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 기숙사에서 권애라로 부터 독립선언서 80여 매를 받아 개성 지역 주요 인사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또한 성경학원 기숙사에서 독립선언서 2,000여 부를 인쇄하여 1919년 3월 1일 2시경부터 개성 시 내 각지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여 3월 3일 1,500여 명이 참여한 개성 만세운동을 주도하 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때 목사였던 신관빈도 함께 참여하여 개성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두 사람은 피체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 1919년 4월 1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1년 6개월 형을 받았다. 86 그리고 어윤희는 1919년 7월 4일 경성복심법원 항소심에 서 초기 형량보다 높은 3년을 선고 받았다. 같이 주도한 권애라는 판결문을 통해 수감사실은 86 〈어윤희, 신관빈 경성지방법원 판결문〉, 1919. 4.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