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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해제 위와 같이 송계월의 성향은 함경도 지역의 역사적 전통과 지리적, 문화적 환경에 영향을 받았으며, 또 그 영향을 받은 인물들로부터 양육되어 자연스럽게 생성된 것이다. 이에 그녀 는 식민지 현실의 모순을 인식하고 자신의 신념대로 이를 타계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맹휴와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즉 신념의 실천성, 높은 교육열 등의 함경도 기질이 그 안에 내재되 어 있었다. 39 이와 같은 함경도인의 서울과 경기 지역으로의 이동은 전체 수형기록카드 중 주 소지가 기재된 인물 가운데 163명이다. 그중 10대가 26명, 20대가 90명, 30대 32명, 50대가 1명, 나머지는 미상이다. 10~20대의 이주가 116명으로 가장 많은 것은 주로 학업을 위하여 상경하였음을 짐작케 한다. 상경 인물 가운데 박선숙과 한정희는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주소지가 경성 인사동 192 번지로 동일하여 함께 서울로 진학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1930년 서울 시내 여학생 만 세운동으로 수감되었는데, 함흥여자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에 입학하였다. 40 이밖에 서울 시내 여학생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피체, 수감되었던 인물 가 운데 함경도 출신은 이들 박선숙(함남 함흥)과 한정희(함남 함흥)를 비롯하여 이순옥(함북 경 성), 송계월(함남 북청), 윤옥분(함북 종성), 최현수(함남 원산), 안임순(함남 함흥), 김금남 (함북 명천) 등 8명으로 함경도인의 기질적 성향을 알 수 있다. 41 그러나 함경도 출신의 독립운동 참여 비율이 높은 사유는 이런 사항 외에도 일제 강점기 사회적, 문화적 혹은 타 분야와의 연관 관계 등 다양한 원인이 있을 것이다. 이는 향후 한국 독립운동사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검토해야 할 하나의 과제로 제시하고자 한다. 이외 수형기록카드의 활용 측면에서 주목한 방법론은 여성 수감자들의 직업과 수감 일자, 출신지 등의 정보를 순차로 정렬하여 상호 어떤 연관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180명의 출신 지역과 수감 일자를 정렬해 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표 7〉은 180명 가운데 직업이 학생인 사람들을 먼저 추출하고, 다음으로 검거일, 본적지 순으로 정 리한 것이다. 그 결과 공통적 특징이 보이는 17명을 선별할 수 있다. 이들 17명은 1930년 1월 15일 서울 시내에서 광주학생운동 지지를 위해 펼쳤던 ‘서울 시내 여학생 만세운동’으로 수감 되었던 학생들이었다. 42 39 진선영, 「식민지 시대 ‘북청’의 지역성과 함경도적 기질성」,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65, 한국문학이론과 비평학회, 2014, 279쪽. 40 《동아일보》, 1930. 1. 31, ‘시내여교만세사건 금일검사국송치’ ;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 자료집』 51, 2002, 189~191 쪽, 198~200쪽. 41 《동아일보》, 1930. 2. 12, ‘기소유예된 여학생 24명 당야 출옥’. 42 《중외일보》, 1930. 1. 31, ‘여학생만세사건의 27명 필경 송국’ ; 《동아일보》, 1930. 1. 31, ‘시내 여학교 만세운동 검거자 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