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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해제 8) 경상북도 경북 지역의 3·1운동은 3월 8일 대구에서의 만세운동 이후 5월 7일 청도군 매전면 구촌동 만세운동까지 두 달 동안 80곳이 넘는 곳에서 90회 이상 일어났다. 151 이 자료총서에 수록한, 경상북도에서 만세운동을 펼친 여성은 대구의 임봉선(林鳳善), 영덕의 신분금(申分今)·윤악이(尹岳伊)이다. (1) 대구(大邱) 대구에서의 3·1만세운동은 다음과 같이 전개되었다. 152 대구 지역은 경북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 3월 8일 서문시장을 시작으로 3월 10일 남문 밖 시장, 그리고 달성군 팔공산 동화사 소속 지방학림 학생들에 의한 3월 30일 남문 밖 시장, 이어 4월에는 수성면 대명동과 공산면 미대동에서 독립만세가 펼쳐졌다. 또 상인들의 철시투쟁과 비밀결사 혜성단의 활동이 약 두 달 동안 전개되었다. 대구에서 3·1운동이 처음 일어난 서문시장의 독립만세는 2월 24일 밤 개신교측 대구경북지역의 「독립선언서」 배포책임자인 이갑성이 비밀리에 남성정(南城町)교회를 방문하고 목사 이만집, 조사 김태련, 그리고 계성학교(啓聖学 校) 교사 백남채 등을 만나면서 시작되었다. 이갑성은 파리강화회의가 열리는 기회를 이용하여 독립을 청원할 것이며, 이를 응원하기 위해 서울 및 전국에서 독립만세가 준비되고 있으니, 대구에서도 독립만세를 일으킬 것과 대구를 대표해 이만집이 서명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독립선언서」가 발표되고, 이갑성은 「독립선언서」 200매를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 이용상(李容祥)을 통해 3월 3일 이만집에게 전달하였다. 그러자 이만집은 독립만세를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남산교회의 김태련과 신정교회 장로이자 계성학교 교감인 김영서(金永瑞)를 만났다. 세 사람은 장날인 3월 8일 오후 3시 서문 시장에서 독립만세를 전개할 것을 합의하고, 동지를 모으는데 나섰다. 신정교회 목사 정재순(鄭在淳)과 장로 정광순(鄭光淳), 계성학교 교사 백남채, 최상원(崔相元), 권의윤(權義允), 최경학(崔敬學)을 참여시켰다. 이어 김태련·이만집·정광순·정재순은 151 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안동독립운동기념관, 『경북독립운동사 III』, 경상북도, 2013, 35쪽. 152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독립운동사』 2, 독립유공자사업기금운용위원회, 1979, 347~352쪽 ; 『독립운동사』 3, 1979, 350쪽 ; 권 영배, 「대구지역 3·1운동의 전개와 주도층」, 『조선사연구』 6, 조선사연구회, 1997 ; 김진호·박이준·박철규, 앞의 책, 2009, 308~310쪽 ; 안동대학교 안동문화연구소·안동독립운동기념관, 앞의 책, 2013, 54~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