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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총 설 월 23일의 국민대회를 제외하고는 활발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각종 유인물을 제작 배포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자극하고 분위기를 조성하는 양상이 전개되었다. 경기도의 3·1운동은 서울과 인접하여 있음에도 개성을 제외하고는 3월 초순에 거의 독립 만세운동이 전개되지 않았다. 3월 중순에도 고양·양주·파주·강화·김포·진위 등 일부 지역에서만 독립만세 권유 활동이나 독립만세운동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3월 하순에 이 르러 본격적인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어 모든 군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경기도에서는 인구 분포 상 대규모 인사들이 참여한 독립만세운동이 많이 전개되었고, 특히 3월 18일 강화 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은 참가 인원이 10,000명에 달하였다. 또한 격렬하게 전개된 독립 만세운동으로 수원 송산과 장안·우정, 안성 원곡·양성의 독립만세운동은 일경들을 응징한 대표적인 독립운동이었다. 그리고 구장 등의 독립만세 권유 활동이 활발하였고, 면장과 면 직원에게 독립만세를 부르게 하는 양상이 전개되었다. 강원도의 3·1운동은 천도교 측에 의해 3월 1일부터 독립선언서가 배포되었음에도 타 지 역과 달리 독립만세운동으로 연결되지 못하였다. 또한 지역적 특성으로 외부와의 접촉과 영 향이 적은 관계로 철원·이천·평강 등을 제외하고는 3월 중·하순까지는 거의 독립만세운 동이 전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3월 말경부터 4월 초순까지는 각 군 지역에서 활발히 독립만 세운동이 전개되었다. 군수를 포함한 면장과 면 직원에게 독립만세를 부르도록 요구한 사례 가 있었다. 또한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려는 노력과 활동이 이천의 김병주·김순필과 판교 의 이병준·한인백 등에 의해 추진되었다. 그리고 독립만세운동이 초기에는 철원지역이 활 발하였으나 도내에서 가장 활발하고 늦게까지 전개된 지역은 이천지역이었다. 충청도의 3·1운동은 3월 중순까지 2~4개 지역에서 거의 매일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다 가 3월 27일부터 2~5개 지역으로 증가하면서 3월 31일부터 급속히 증가하였다. 주도 인사 도 유학자·종교인·학생·상인 등 다양한 계층이 독립만세운동을 추진하고 또한 계층 간에 연합하여 추진된 사례가 많았다. 그리고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사례가 많았고, 주도 인사가 연속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거나 같은 지역이나 장소에서 전개되는 사례가 많았다. 특 히 독립만세를 가장 많이 부른 곳이 마을의 산이었다. 이는 충청도의 가장 대표적인 독립만 세운동 형태인 횃불독립만세운동이 3월 23일부터 충북 청주와 충남 연기에서 시작하여 충청 도 전역으로 확산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