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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총 설 매곡에서는 4월 2일부터 6일까지 매곡·황금(추풍령)면 일대에서 안준(安準)·신상희(申 相熙)·김용선(金容善)·안광득(安光得) 등 주도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안준·신상 희·김용선 등은 4월 2일 노천·옥천리에서 주민들과 독립만세를 불렀다. 오전 11시경 밤나 무 양묘장 작업에 동원된 면민 약 100명이 면사무소에 가서 면장과 직원에게 독립만세를 먼 저 부르게 하고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어 안준·신상희·김용선 등 8명은 4월 3일·4 일 면내를 순회하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3일 밤에 약 100명이 노천리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거류 일본인에게도 만세를 부르게 하였다. 4일 오전 11시경 약 800명이 태극기를 앞 세우고 면사무소 앞마당에서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일제는 연일 계속되는 독립운동에 추풍령헌병분견소 헌병을 출동시켜 안광덕(安光得)·임봉춘(林奉春·燦圭)·남도학(南道學) 을 체포 압송하였다. 이에 면민 약 150명은 추풍령까지 헌병들을 뒤쫓았으나 구출하지 못했 다. 그러나 오후 11시 30분경 숙소에 불을 놓아 다음날 오전 0시 30분에 진화되었으나 숙소 는 전소시켰다. 이어 4월 6일에는 안준·신상희·김용선 등이 ‘독립기’를 앞세우고 약 300명 과 구금 인사 구출을 위해 출발하였다. 이들은 오전 11시경 추풍령에 도착하여 구출을 시도 하였으나 헌병들의 강력한 제지를 받았고 주도 인사들도 체포되었다. 양산에서는 4월 3일 박중옥(朴中玉)·김용문(金用文)이 오후 2시경 200여명과 면사무소 부근에서 조선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어 경찰주재소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순사보 김영환(金令煥)을 구타하는 등 일제 세력을 응징하였다. 5. 충청남도 1) 대전군 인동에서는 3월 27일·4월 1일 김창규(金昌奎)·김직원(金直源) 등 주도로 독립만세운동 을 전개하였다. 김창규는 김정철(金正哲)에게 「독립선언서」·「국민회보」·「독립신문」 등 약 300매를 받아 보관하였다. 그는 3월 27일 김현태(金顯泰) 집에서 김완수(金完洙) 등 7명과 만나 독립만세를 합의하고 오후 3시경 인동시장으로 나아갔다. 김창규는 군중들에게 “이때 유독 대전만이 빠지고 있음은 큰 치욕이 아니냐”고 연설을 하고, 김완수 등은 태극기를 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