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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 자료집 (3·1운동Ⅰ ) 서를 미원 헌병주재소장에게 차출(差出)하였는가?”, “너희들은 조선독립을 방해하는 자들이 다”라고 힐책하며 친일적 인사를 비난하였다. 북일에서는 4월 1일·2일 양일간 한봉수(韓鳳洙)·변영봉(卞榮鳳·聖西) 등 주도로 독립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4월 1일 밤 한봉수가 임봉수(林鳳洙)·이태우(李太雨)와 옛시장터에 서 세교리 주민 여러 명과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튿날에도 그는 정오경 옛시장터로 나갔다. 마침 식목 행사로 옛시장을 통과하는 내수보통학교 학생 약 85명과 인솔교사 엄익 래(嚴翼來)·이건간(李建簡)에게 만세를 권유하여 주민·학생·교사가 함께 독립만세를 고 창하였다. 또 우산리 변영봉(卞榮鳳·聖西)·신석범(申錫範)·송태현(宋台鉉·應三) 등이 뒷 산에서 주민 수십 명이 횃불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저곡리 박제우(朴齊宇)는 “4 월 2일 청주시장에 집합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할 것”이라는 통고문 1통을 받아 덕암리 김학 술(金學述)에게 교부하여 주민들에게 전달하였다. 북이에서는 4월 1일 김호상(金浩相)이 같은 면서기 김정환(金貞煥)·이시우(李始雨)와 사 환 장성이(張星伊)을 설득하여 주민들에게 독립만세를 권유하여 오후 8시경 신대리 앞산에 서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2) 진천군 진천에 독립선언서는 3월 9일 김교환(金敎煥)·최봉길(崔鳳吉)에 의해 전달되었다. 김교 환은 서울에서 3월 7~8일경 선언서와 경고문 1통씩을 입수하여 3월 9일 최봉길에게 보이며 “우리 교주의 발의에 따라 조선은 독립할 기운을 만났다. 이를 숙독한 다음에 진천의 교도들 에게 반포하라”고 부탁하였다. 최봉길은 다시 최원순(崔元順)을 통하여 진천의 김동한(金東 漢)에게 전하도록 하였다. 백곡에서는 4월 2일 오성문(吳聖文) 주도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그는 4월 1일 대 문리에 통지하고, 갈원리 주민을 설득하였다. 4월 2일에는 도촌(濤村) 양백·성대·용덕리 주민들이 참가하고, 공명삼(孔明三)의 권유를 받은 이종하(李鍾夏)는 성대리 주민 약 20명을 설득하여 면민 1,000여명이 석현리로 모였다. 오성문·공명삼·이종하 등의 주도로 면민들 은 시장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고, 헌병주재소 부근에서 밤을 새워 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승에서도 같은 날 윤병한(尹炳漢) 주도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4월 1일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