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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총 설 (崔一龍)·전용섭(全容燮) 등에게 평강·김화에 배포를 부탁하였다. 전창석은 33매, 권병식 은 2매, 전용섭은 1매를 받아 3월 2~3일 각 마을에 배포하였다. 김봉진(金奉津)도 3월 1일 1 매를 받아 3월 2일 이달근(李達根)에게 주민이 볼 수 있는 길가에 게시하라고 하였다. 그러 나 3월 1일 선언서가 도착하였지만 다른 지역과 달리 독립만세운동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고삽에서는 3월 18일 김찬호(金瓚鎬)가 중평리 성화실에서 김화춘(金華春)·신상은(申相 殷) 등 교도 12명에게 “인내천(人乃天)”을 주제로 “우리 조선은 일본의 압박을 받아 왔으나… 조선의 국권을 회복하고 조선인된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아니된다”라 설교하여 독립 의식을 고조시켰다. 평강에서는 4월 7일 권대완(權大完)·권의준(權義俊) 주도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 다. 4월 4일 권대완·이예모(李禮模)가 정산리 개천가 바위 동굴에서 협의하고 태극기 2기 를 만들었다. 이들은 4월 6일 주민들에게 “내일 7일 새벽에 반드시 읍내로 모이라”고 사발 통문을 발송하였다. 4월 7일 권대완·권의준이 나매리 주민 약 400명과 읍내로 갔다. 오전 5시 30분 권대완·권의준이 태극기 2기를 흔들며 면민을 이끌고 서변리에서 동구리까지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어 군청·면사무소로 이동하며 1시간 동안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9) 통천군 통천에 독립선언서는 평강과 회양을 거쳐 신태윤(申泰潤)에게 전달되어 도착하였다. 평강 교구장 이태윤이 김천일(金千鎰)에게 120매를 회양 상송관리 유한영(劉漢永)에게 전달을 부 탁하여 아들인 유인경(柳寅景)에게 배부하여 도착하였다. 유인경은 3월 3일 초일리 영낙교 부근에서 박병운(朴炳云)에게 32매를 회양군에 배포를 부탁하고, 나머지 3매는 다리 부근에 부착하였다. 박병운은 신태윤에게 32매를 통천군에 배부를 부탁하고, 신태윤은 다시 벽양 대림리 임병준(任秉準)에게 30매 배포를 부탁하고 2매를 부근 게시판에 첨부하였다. 임병준 은 송산리 공면술(孔冕述)에게 30매를 통천 군내 각처에 배포하게 하였다. 임남에서는 독립선언서를 받은 지 1개월의 지난 4월 2일·3일 양일간 최상린(崔祥麟) 주 도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2월 말경 경성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받았으나 독립 만세운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3월 하순경 김두만(金斗滿)·안겸식(安兼植)·우낙영(禹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