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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 자료집 (3·1운동Ⅰ ) 6) 홍천군 홍천에서는 4월 1일 차봉철(車奉哲) 주도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서울 3·1운 동을 목격하고 보고 귀향하여 서상우(徐相佑)와 독립운동을 협의하였다. 이어 이홍근(李洪 根)·임준홍(林準弘) 발의로 11명이 10일 전부터 2회 회합을 갖고 4월 1일 독립만세를 결의 하였다. 3월 30일 차봉철 등이 노동근(盧東根) 집에서 오창섭(吳昌燮)에게 4월 1일 읍내 독 립만세운동에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참가하도록 마을 주민들에게 그 뜻을 권유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오창섭은 김원봉(金源鳳)과 성동리 전원봉(全元鳳) 집에서 각 집마다 한 사람씩 참가하도록 신흥균(申興均)에게 부탁하고, 신흥균·김원봉은 각 집을 방문하여 전달하였다. 3월 31일에도 다시 노동근 집에 가서 기동리 주민들에게 전달을 부탁하였다. 또한 같은 날 김수완(金壽完)·차봉환(車鳳煥) 등 9명을 신장대리 고익진(高翼振) 집 앞 도로에 모이게 하 여 4월 1일 도로 수축 인부로 집합하는 주민들을 참가시키기로 합의하였다. 4월 1일 오후 1 시경 차봉철이 태극기를 휴대하고 서상우·김기현(金基鉉)과 신장대리시장으로 가서 김옥인 (金玉仁) 등 약 200명 군중과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오창섭·김영옥(金永玉)이 태극 기를 흔들며 독립만세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어 군청에서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7) 춘천군 춘천에서는 독립만세 권유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동면에서는 윤도순(尹道淳)이 독립 만세를 결심하고 면리를 순회하였다. 그는 3월 10일 만천리, 13일 가연리, 14일 신남 송암리 등에서 수 명에게 읍내에서 독립만세를 권유하였다. 사북에서는 3월 31일 이교관(李敎寬)이 오탄리 최기환(崔基桓) 집에서 김공모(金公模) 등과 회합하여 4월 1일 석양 때 독립만세를 외 칠 것을 결의하였다. 그는 윤복균(尹復均)·윤철쇠(尹鐵釗)에게 권유하고, 김공모는 독립운 동 가입을 권고하는 회장(回章)을 각 호(戶)에 회부하고 한의봉(韓意鳳) 등이 회람하였다. 8) 평강군 평강에 독립선언서는 2월 28일 안상덕이 동변리 천도교구실에 이태윤에게 독립선언서 600매를 전달하여 도착하였다. 이태윤은 3월 1일 이면하(李冕河)·전창석(全昌錫)·김찬호 (金瓚鎬)와 배부를 결정하고, 김정찬(金正燦)도 찬성하였다. 이어 권병식(權炳植)·최일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