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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 자료집 (3·1운동Ⅰ ) 3~400명이 주재소·우편소에 투석하여 주재소 유리 3매를 깨뜨렸다. 특히 이 독립운동에 서 노동자와 어린아이들도 참가하여 투석을 하였다. 3) 횡성군 횡성에 독립선언서는 3월 14일 대교구장 최종하(崔宗河)가 영영포리 신재근(申在根) 집에 서 김인향(金麟鄕)에게 12매를 교부하여 도착하였다. 김인향은 3월 20일경 상안흥리 집에서 이인영(李麟榮)에게 3매를 교부 배포토록 하였다. 횡성에서는 3월 27일·4월 1일 신재근(申在根)·정해경(鄭海璟) 주도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신재근·장도훈(張道勳)이 3월 10일 영영포리에서 회합을 갖고 신재근이 태극 기·독립선언서 구입 자금 3원을 장도훈에게 지급하였다. 장도훈은 3월 11·12일경 상경하 여 태극기 1기·태극기(한지) 20기·독립선언서 40매를 사서 3월 26일 귀가하였다. 이들은 3월 27일 오전 11시경 시장 입구에서 윤태환(尹泰煥)에게 태극기를 교부하며 “오늘 신시장 쪽에서 독립운동을 하므로 너도 함께 만세를 부르자”고 권유하였으나 윤태환이 반응하지 않 았다. 재차 권유에도 말이 없자, “너는 청년인데 그다지도 정신이 없고 썩어서 어떻게 할 것 이냐? 국민된 의무심으로 크게 찬성하지 않아서는 안된다”고 독려하였다. 또 윤태환이 받은 것이 태극기임을 알고 “이러한 것을 하면 헌병에게 체포된다”고 말하자, 신재근은 “정신이 빠졌다. 의무심이 없다”고 참가를 재촉하였다. 윤태환은 “그렇다면 해보자!”며 오전 12시경 신도로쪽으로 갔다. 때마침 신재근·장도훈이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자, 윤태환도 태극기 를 휘두르며 기수가 되어 대한독립만세를 열창하였다. 이들은 안경춘(安敬春)·강만형(姜萬 馨) 등 300여명에게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주며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4월 1일에는 정해 경·김성서(金聖西)가 오후 5시경 읍내시장에서 정해경의 선창으로 전성수(全聖洙)·조상렬 (趙常烈) 등 군중과 조선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둔내에서는 4월 5일 이기순(李奇順)이 자포곡리 천관여(千官汝) 집에서 주민에게 학생들 이 조선독립만세를 부르기 위해 마을로 올 것이니, 그때에 여러분은 학생들과 조선독립만세 를 고창하여 독립운동을 활발히 하도록 당부하였다. 서원에서는 4월 12일 송병창(宋秉昌)·유정근(柳定根) 주도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 다. 분일리 송병창 집에 있던 송병기(宋秉箕) 등이 송병창의 독립만세 주장에 오후 9시경 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