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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총 설 永)에게 “경성에는 매일 독립운동을 하고…관헌에게 인치되어도 겨우 1일쯤 검속처분으로 석방되니, 동지를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하라”고 권유하였다. 16) 용인군 기흥·읍삼에서는 3월 20일 김구식(金九植)이 오전 10시경 하갈리 강가에서 수십 명과 조 선독립만세를 연호하고, 오후 2시경 읍삼 구읍내에서 약 30여명에게 만세를 권유하였다. 원삼에서는 3월 21일에 황경준(黃敬俊) 등이 좌항·사암·맹리 주민 수백 명과 면사무소 에서 오전 3~6시 무렵까지 조선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포곡에서는 3월 28일 정규복(丁奎復)이 수백명과 둔전·수여 유방리로 가서 만세를 고창 하였다. 오전 7시경 모현 초지리 인사의 권유를 받은 권종목(權鍾穆)은 삼계리 주민을 이끌 고 금어리를 지나 둔전리로 갔다. 홍종욱(洪鍾煜)·홍종엽(洪鍾熀 )은 금어리 주민 200여명 을 인솔하고 대대리로 이동하였다. 이와 같이 군중들은 금어리에서 출발하여 면내를 순회하 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수지에서는 3월 29일 이덕균(李德均)이 오전 8시경 “각 집에 1명씩 나와 동천리 방면으로 가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라”고 주민에게 알렸다. 그는 9시경 고기리 주민 약 100여명을 이 끌고 안종각(安鍾珏)이 만든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부르며 동천리로 향하였다. 동천리에서 약 300여명이 합류하여 면내를 순회하고, 11시 30분 면사무소에서 만세를 불렀다. 이어 그 는 읍삼 마북리까지 가서 오후 2시경까지 만세를 외쳤다. 내사에서도 같은 날 한영규(韓榮圭)·김운식(金云植)이 남곡리 주민 100여명과 한영규가 만든 태극기를 흔들며 양지리로 가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17) 포천군 신북에서는 3월 29일 조종연(趙鍾淵)·조훈식(趙薰植)이 만세교리에서 “이튿날 30일 아 침 포천군 신북면사무소 앞에 집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칠 터이니 이민들을 선동하여 이에 참가하라”는 통문 십수 통을 삼성당·고일·심곡·외일리 구장에게 보내기로 하였다. 조훈 식은 구장 2명, 최학돌(崔學乭)은 4통을 삼성당리 서상련, 조계식(趙啓植)은 2통을 중면 양 문·거사리 구장에게 배부하였다. 거사리 유중식(兪中植)은 통문을 받아 거사·양문리에 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