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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 자료집 (3·1운동Ⅰ ) 약 30여명과 태학산에서, 이윤성(李潤成)이 3월 30일 약 10명과 신촌동 동산에서 횃불독립 만세를 외쳤다. 이병성(李炳星)은 3월 29일부터 주민과 반룡산에서 횃불을 올리고 대한독립 만세를 약 1시간 정도씩 3일 밤을 불렀다. 그는 3월 30일 “면사무소 앞에 집합하라”는 통문 을 각 마을에 배포하고, 이튿날 태극기를 게시판에 게시하고 약 20명을 이끌고 면사무소로 갔다. 정오경 면사무소에 약 200명이 모였고, 이병성 등은 태극기를 문기둥에 세우고 조선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어 면장 윤좌영(尹佐榮)에게 “면사무를 보지 말라”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게 하고, 면장에게 “국기(일장기)를 내 놓으라”하여 소사에게 건네 받았다. 일장기를 태 우라는 요구를 면장이 거절하자, “지금부터 이병성은 대일본 국기를 불태워 버린다” 말하고 부근 밭에서 태웠다. 우정시(禹楨時)·우정화(禹楨和)는 3월 29일 밤 항동리에서 주민 수십 명을 이끌고 도덕암산·시라위산에서 횃불을 올리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들은 이튿날 밤에도 주민 약 70명과 태극기를 앞세우고 고덕리 면사무소에서, 오후 11시경에는 주민 약 150명과 면장 윤좌영 집에서 조선독립만세를 불렀다. 또한 4월 2일 오전 10시부터 정오 무 렵까지 구시장터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주민들과 고랑포시장에 가는 약 100명과 조선독립만 세를 고창하였다. 진남에서는 3월 26일 이창영(李昶永) 등이 오후 10시 동장리 성화학교 뒤에서 주민 100 여명과 대한국독립만세를 외치고 그의 제의로 면사무소로 갔다. 이창영·강규수(姜奎秀) 는 “면장은 나오라”, “면사무소를 쳐부숴라!”고 외치고, 군중들은 투석하여 유리 21장를 깨 뜨렸다. 진서에서는 3월 29일 이봉철(李奉哲)이 오후 11시경 100여명과 면사무소에서 한국독립만 세를 외쳤다. 면장 송원섭(宋遠燮)에게 독립만세를 부르게 하고, 이봉철 등은 한국독립만세 를 부르며 일장기 2기를 면민 앞에서 불태워 버렸다. 대남에서는 4월 1일 함정원(咸貞元)·이재삼(李在三)이 “이날 밤 동면 각자는 작은 태극기 1기, 5명마다 횃불 1개, 각동마다 대형 태극기 1기를 가지고 대남면 위천리 용산동에 집합하 라”는 통지 수통을 동장들에게 보내 주민 회람을 시키고 밤에 약 100명과 면사무소·명성학 교 앞마당에서 독립만세를 외쳤다. 4월 3일에도 오후 1시경 약 1,000명과 용산동에서 한국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상도에서는 4월 9일 공세영(孔世榮)이 경성결사단(京城決死團) 파견원으로 이헌영(李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