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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 자료집 (3·1운동Ⅰ ) 용문에서는 3월 30일 광탄리 신순근(辛淳根)이 한국독립기를 흔들며 주민과 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조영호(趙瑛鎬)는 “독립은 천운이니, 사람의 힘이 미칠 바가 아니다. 일본인은 모 두 본적지에 귀국하라”는 일본인 퇴각을 주장하였다. 양서에서는 4월 2일 여운긍(呂運兢)·여광현(呂光鉉)이 정오쯤 면사무소에서 1,000여명 군중 속에 들어가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어 경성 학생과 주민들이 3일에도 독립만 세를 결의하고 고읍 창리에서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12) 수원군 수원의 대표적 독립운동으로 3월 28일 송산에서, 4월 3일 장안·우정면에서 순사를 응징 하였다. 송산에서는 먼저 3월 26일 오후 5시경 홍면(洪土冕·冕玉)이 사강리 면사무소 부근에 서 태극기를 게양하고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이어 왕광연(王光演·國臣) 등 수십 명도 면사무소에서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이어 홍면·왕광연 등은 3월 28일 오후 2시경 면사무 소 뒷산 및 부근에서 홍관후(洪寬厚·在範)·문상익(文相翊) 등 1,000여명과 태극기를 흔들 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순사부장 야구광삼(野口廣三)이 홍면 등 3명을 체포하고, 홍면 의 행동을 제지하려고 권총을 발사하여 홍면의 등에 명중시켰다. 홍면은 격노하며 군중에게 자기를 쏜 “순사를 쳐 죽이라”고 외쳤다. 김용준(金容俊·用俊)·민용운(閔龍雲)·문상익· 왕광연 등도 계속 “순사를 응징하라”고 또는 “쳐 죽이라”고 주장하였다. 순사부장은 일시 피 난을 위해 오후 3시경 자전거를 타고 탈출을 시도하였다. 순사부장이 주재소에서 동쪽 약 60간(間) 떨어진 지점까지 도주하였다. 그러자 왕광연·홍관후·홍준옥(洪埈玉)·김명제(金 命濟·明濟·道鉉) 등이 돌을 던져 순사부장을 자전거에서 떨어뜨리고 돌·몽둥이 등으로 난타하여 사망시켰다. 장안·우정에서는 4월 3일 장안·우정 면민들이 각 면사무소와 화수주재소를 파괴하고 순 사를 응징하는 독립운동이 있었다. 먼저 4월 2일 밤 장안·우정 면내 각처 산에서 횃불을 올 리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때 차병혁(車炳赫)·차병한(車炳漢) 등은 장안·우정 면사무소 및 화수주재소를 습격하기로 결의하고, 이튿날 오전 장안 면민에게 몽둥이를 가지고 면사무 소로 집합하라고 통지하였다. 우선 면사무소로 가서 면장 김현묵(金賢默)에게 면사무를 중 지하고 독립만세를 부를 것을 권유하였다. 한편 차희식(車喜植·鳳習)·장소진(張韶鎭·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