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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3월 30일 신북면사무소 앞에는 포천 지방 각 지역 주민들에게 시위운동 계 획을 전파한 결과 신북면·일동면一東面·이동면二東面·영중면 등에서 2,000여 명의 주민들과 시위를 계획하고 추진했던 조훈식·최학돌·유중식·김수종· 함병현 등이 모였다. 이때 한 청년이 “여러분, 우리나라는 독립되었으며 세계 각 국이 우리를 원조하고 있습니다”고 하는 일장의 연설을 하여 군중들의 피를 끓 게 하였으며, 이어 군중들의 “대한독립만세”의 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그 리고 태극기를 앞세우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는 조훈식의 뒤를 따라 만세시 위를 전개하였다. 가산면에서는 최석휴 崔錫休가 중심이 되어 청년들을 규합하며 치밀하게 시 위운동을 준비하여 마침내 이날 1,000명이 모여 독립만세 시위행진을 벌였으며, 다음은 소홀면주재소를 습격하여 경찰과 충돌하였다. 최석휴는 경찰이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4월 1일에는 일동면 기산리機山里의 주민 200여 명이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펼쳤고, 4월 3일에는 신북면 삼정리 三政里에서 독립만세 시위운동이 있었다. 같 은 날, 일동면 장암리 場岩里의 주민 500여 명과 노곡리蘆谷里 주민 400여 명도 독 립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영북면 자일리 사는 안응건 安應乾은 주변 각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나 는 것을 보고, 시위운동을 더욱 확산시키고자 태극기 25장을 만들어 각 집에 게 양하도록 하였다. 또한 “4월 3일 밤에 동리에 모여 독립만세를 부르겠다. 여기 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애국자가 아니다”라는 격문을 동리에 돌려 시위에 참 여하도록 독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