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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3월 30일 광탄면에서는 봉일천 시장에서서 일본 헌병대 만행을 규탄하는 시위가 일어났다. 수많은 주민들이 이에 합세하여 시위규모는 3,000여명에 이르 렀다. 이들은 헌병주재소를 습격하고 구금된 인사 한 명을 일시 탈환하기도 했 다. 또 이날 천현면 법원리에서는 봉일천 만세시위에서 희생된 김남산의 장례를 치른 후 일제의 만행에 항의하는 추모 만세시위가 열렸다. 시위대는 법원리를 출발하여 문산 방면으로 행진하였는데 도중에 일제 군경의 발포로 강복산姜福山 등 2명이 또다시 목숨을 잃었다. 포천 포천의 집회는 박은식에 따르면, 천 명이 4회에 걸쳐 벌였다. 또 이지원의 집계 에 따르면, 모두 7회의 시위가 있었는데, 3월 29일(3회) , 30일(3회), 그리고 4월 3 일 (1회) 이다. 3월 13일 오전 11시경 포천공립보통학교와 영중면永中面에 소재한 영평永 平 공립보통학교에서 만세시위 움직임이 있었다. 이날 포천공립보통학교에서는 3·4학년 학생들이 주동이 되어 1·2학년 학생들과 함께 일본인 교원들의 눈을 피해 학교 뒷산에 올라가 독립만세를 불러 포천 지방에 3·1운동의 첫 함성을 울 렸다. 같은 날에 영평공립보통학교에서도 3학년 학생인 정수환鄭壽煥은 3·4학년 학생들에게 철원 鐵原과 포천에 있는 다른 학교들은 이미 3·1운동에 호응하여 동 맹휴학을 단행하고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였 다. 정수환은 영평공립보통학교도 빨리 동맹휴학하고 독립만세 시위운동에 나 설 것을 권유하다가 일본인 교원들의 제지로 말미암아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3월 24일 소흘면蘇屹面 송우리松隅里와 영중면 영평리永平里 에서 독립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