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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91 성하여 동시 다발의 봉화시위를 벌였다. 이를 해산시키려고 일본 군이 출동하자 면민들은 산위에 서 돌을 던지며 일본 군경에 대 항하였다. 또 4월 19일 오전 2시 부발면과 강원도를 잇는 경계에 설치된 옥하교沃河橋에 화재가 발생하여 65칸의 교량 중 30칸 이 소실되는 사건도 있었다. 장단 일제강점기 장단군은 전쟁과 분단으로 그 관할구역의 일부 지역은 휴전선 이북 에 있으며, 다른 일부 지역(장단면, 군내면, 진동면, 진서면)은 1972년에 파주에 속하 게 되었다. 박은식은 장단에서 2회 700명이 모였다고 기록했다. 이지원은 9회 시위를 했다고 집계했다. 날짜별로 보면, 3월 24일, 26일(2회) , 29일, 31일, 4월 2 일 (4회) 이다. 장단군의 3·1운동은 3월 23일 진남면에서 110명이 만세 시위를 했다는 기 록이 있고, 24일 거곡리에서 약 2백명의 군중이 시위를 벌이다 1시간 만에 해산 했다. 이어 본격적인 시위는 3월 26일부터 4월 초 사이에 일어났다. 3월 26일 진남면 지역에서 시위운동이 본격화되었다. 동장리의 이창영李 昶永 ·강규수姜奎秀·한기동韓基東·정순만鄭順萬·백태산白泰山 ·조진행趙秦行· 이성구 李聲九·양재영梁在瑛·정종락鄭鍾樂 등은 3·1운동 발발 소식을 접하고, 자 권중효·한석동 사진(국사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