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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87 되어 있으니, 당신 동리에서도 만세를 부르라”고 하였다. 금어리 이민 약 200 여 명은 홍종욱洪鍾煜(27세, 농업, 기독교 장로교) 과 홍종엽(21세, 무직, 기독교 안식 일교) 의 주도로 태극기를 받들어 들고 내사면 대대리까지 시위행진을 전개 하였다. 3월 29일에는 내곡리에서 100명의 시위와 내사면 양지리에서 100명의 평 화시위가 일어났다. 내사면 시위는 드물게 보이는 경우로 천주교인에 의해 주 도되었다. 남곡리 천주교인 한영규韓榮圭(37세)와 김운식金云植(21세)은 3월 29일 100여 명의 이민들을 집결시킨 후 한영규가 가지고 있던 태극기를 받들고 만세 를 높이 부르면서 같은 면 양지리까지 시위행진을 하였다. 3월 30일 김량장리 읍내에서 2,000명이 시위를 벌여 일제의 발포로 2명이 사망했다. 또 기흥면 사무소 앞에서 300명의 시위가 있었다. 같은 날 오전 10시 경 기흥면 하갈리 강가 평지에서 수십 명의 이 마을 주민들이 김구식金九植(39 세, 농업) 의 선도로 조선독립만세시위를 연달아 부르고, 오후 2시경에는 읍삼면 읍내에까지 진출하여 만세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수지면·읍삼면에서 천도교 인과 농민 1,500명이 격렬한 시위가 일어나 35명이 검거되고, 2명이 사망, 3명 이 부상했다. 3월 31일 외사면에서 3,000명의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 면사무소 헌병주재 소를 습격했다. 일본군의 발포로 1명이 죽고 약간 명이 부상했다. 이날 이동면 송전리에서도 700명의 농민이 평화시위를 벌였고, 원삼면 사암리에서 300명, 송 홍종욱 수형기록(국사편찬위원회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