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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79 로 최대봉·박석몽朴石夢·최대복崔大福 ·유희상柳熙庠·이흥록李興綠·최영갑崔 永甲 ·양삼돌梁三乭 등 동리 사람 600여 명이 광릉천에 집결하여 조선독립만세 를 외쳤다. 그에 앞서 부평리의 이재일李載日은 ‘동리의 주민들이 광릉천변에 모 여 독립만세를 부를 것’을 촉구하는 격문을 접하고 이 격문을 동리 사람들에게 돌렸으며, 동리 사람들과 함께 격문에 호응하여 모인 것이었다. 일제는 즉시 헌 병들을 출동시켜 시위를 해산시키고, 시위 주동자 8명을 체포하여 기소하였다. 이어서 4월 2일 봉선사 승려였던 김성숙·이순철·현일성·강완수 등 4명 은 양주군 광주 시장에서 격렬한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별내면 고산리에 사는 유생 유해정 柳海正은 3월 하순 글을 써서 봉투에 “일 본황제전하 日本皇帝殿下”라 쓰고, 동경 부윤 앞으로 보내는 봉투에 넣어서 우편함 에 넣어 보냈다. 이 일은 일본 ‘천황에 대한 불경행위’로 간주되어 징역 3년이라 는 중형에 처하였으며, 유해경이 상고하자 공소 이유가 없는 것으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양평 박은식은 양평의 집회횟수와 집회인원을 4회 1,900명으로 기록했다. 이지원은 모두 11회로 집계했다. 3월 10일을 시작으로 24일, 31일 그리고 4월 1일, 3일, 4 일, 5일, 7일, 11일인데, 4월 5일은 3회이다. 먼저 3월 10일 서종면 문호리에서 수백 명이 참가한 만세시위가 있었다. 이 어 3월 23일 청운면 용두리 시장에서 장날을 맞아 시위가 열렸는데, 주로 천도 교인들이 중심이 되었다. 단월면 덕수리 신재원申在元과 부안리 김종학金鍾學은 천도교인으로 독립운동을 계획하고 장으로 향하던 길에 여물리 餘勿里에 있는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