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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75 지하자 저항하였으나, 이승익 등 이 주도자로 체포되고 시위대는 해산하였다. 같은 날(14일) 와부 면 瓦阜面 송촌리松村里의 이정성李 正成 ·김춘경金春經·김현모金顯 模 ·김정하金正夏 는 와부면 일대 를 순회하는 대규모 만세시위를 계획했다. 다음날 (15일)이 되자 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송촌리와 부근의 주민 100여 명 을 모아 태극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시위를 벌이며 면사무소가 있는 덕소리德沼 里 로 행진하였다. 시위대는 조안리 鳥安里와 그 부근의 동리를 지나면서 500여 명 으로 불어났다. 시위대가 덕소리까지 진출했을 때 출동한 일본헌병들이 막아서 며 해산을 요구하며 주도자 3명을 체포하였다. 시위 군중은 체포된 인사의 석방 을 요구하며 총칼로 탄압하는 일본 수비대에 맞서면서 곤봉을 휘두르며 헌병주 재소까지 쇄도하여 압박해 갔다. 헌병들은 공포를 발사하고 40명을 총칼로 체포 함으로써 시위대를 해산시키고 17명을 기소하였다. 이는 양주군의 시위운동 가 운데 가장 많은 기소자 수이다. 3월 18일 화도면 和道面에서는 밤 10시 이달용李達鎔의 주도로 답내리 구영 식 具永植 등과 월산리의 김필규 金弼奎 등은 월산리와 답내리 주민 200여 명과 함 께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이때 일본 헌병에 3명의 주도자가 붙잡혔다. 그러자 시 위군중은 1,000명으로 불어났고 일동은 면소재지 마석우리 헌병대 병참 앞으 로 나아가 검거된 인사의 석방을 요구했다. 시위의 규모가 커지고 가열되자 일 이승익 수형기록(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