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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73 어진 면소재지 동항리로 가서, 주재소 앞에서와 보통학교 앞에서 독립만세를 불 렀다. 양성면 산정리·도곡리·추곡리 등 면소재지 주변 지역 동리들에서 각기 동리 뒷산 또는 행길에서 독립 만세를 부른 후 면소재지로 가서 경찰관 주재소 와 보통학교 앞에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들이 동리연합 시위를 끝내고 각 동 리로 흩어지려 하던 밤 9시경 원곡면에서 양성면으로 넘어오는 성은고개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횃불을 밝혀들고 양성면 쪽으로 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양성면민들은 돌아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원곡 주민들을 기다려 그들과 합류하 였다. 이리하여 2,0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 군중은 동리로부터 동쪽 끝으로 약 300m 거리에 있는 순사주재소로 가서 그 앞에서 조선독립만세를 부른 뒤 투석 하기 시작하였다. 양성주재소 순사와 순사보가 도망쳐 나가자 주재소에 불을 놓았다. 군중의 일부는 “전선을 끊으러 간다”고 하며 달려가고 나머지는 양성우편소로 몰려갔 다. 시위 군중은 사무실에 들어가 쳐부순 책상·의자들을 가지고 나와 약 l00m 남쪽의 밭 가운데 쌓고서 짚 횃불로 불을 붙여 태웠다. 또 우편소 사무실에 걸린 일장기를 떼어 내 집밖에서 불태웠다. 이어 시위 군중은 잡화상하는 일본인 외리 여수外里與手와 대금업자 융수지隆秀知 집을 파괴하고, 가구류와 기물들을 집 바 깥 뜰에 들어내어 불태워 버렸다. 그 다음으로 양성면사무소로 가서 물품을 부 수고 서류를 끄집어내어 집 바깥에서 불태웠다. 시위 군중은 그 이튿날(4월 2일) 새벽 다시 성은고개를 넘어서 원곡면 외가천리에 있는 원곡면사무소 사무실과 서류·물품 전부를 불태웠다. 일제는 보복에 나섰다. 조선주차군 헌병사령부는 수원과 안성지방에 대해 검거반을 4파로 나누어 헌병장교와 경부 警部 등을 지휘관으로 하여 4월 2일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