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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69 서 만세를 부른 후 면내로 행진 하여 경찰관 주재소·우편소· 보통학교 등을 돌며 횃불 만세 시위를 벌였다. 또 29일 군자면 장곡리 주민들도 만세를 불렀다. 3월 30일 오전 10시 약 2,000명의 주민이 수암경찰관주 재소의 서쪽 밭에 모여서 크고 작은 깃발을 들고서 “수암주재소·면사무소를 불태워버리자”고 외치면서 동 관 청에 몰려가 만세를 불렀다. ‘수암면 수암리 비립동 비석거리에서 독립만세를 부 르니 모이라’는 격문을 보고 모여든 군중들이 벌인 시위였다. 홍순칠은 와리에서 만든 태극기를 받아 대열의 선두에 서서 시위대를 이끌며 수암리 면내로 들어갔 다. 경찰관이 출동하여 시위대에 해산을 요구했으나, 시위 군중은 이를 무시하 고 공립 보통학교, 경찰관 주재소, 면사무소로 행진하며 그 앞에서 만세를 불렀 다. 홍순칠은 자기 동리에서 유익렬柳益烈의 하인 임학신林學信 에게서 통지를 받 고 참여하였으며, 동리 허치선 許致善 집에 모여가지고 그 집에서 30명을 인솔하 고서 수암면 남쪽 밭에 이르니 그때 그곳에는 이미 1,200~1,300명이 모여 있었 다. 홍순칠은 동리민 참여자의 인원조사를 하고 있을 때 순사가 와서 해산을 명 령하자, 그곳에 모인 사람들끼리 해산의 가부에 대하여 논란이 일어났다. 그때 유익수가 선두에 서서 면내 쪽으로 인솔하자 군중도 “눈사태가 난 듯이” 행진하 여 면내를 돌며 만세시위를 왕성하게 전개하였다. 3월 31일 남면 주민들은 인근의 수원군 의왕면 주민들과 합세하여 2,000명 이복래 수형기록 (국사편찬위원회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