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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상자가 속출하였다. 흥분한 시위군중은 화수주재소를 불태우고, 천단 순사를 살 해하였다. 일본인 순사가 살해되자 일제는 보복에 나섰다. 4월 4일 새벽, 사방에서 요 란한 총소리와 함께 일본군 제20사단 39여단 78연대 소속 유전준부有田俊夫(제암 리 학살의 주역) 중위가 이끄는 1개 소대병력이 발안에서 달려와 화수리를 완전 포 위했다. 화수리 여수동·화수동·굴원리 주민들은 일경의 보복을 예상하고 노 인들만 남기고 캄캄한 밤중에 원안리와 호곡리 바다쪽으로 피신했다. 4월 5일 새벽 유전 중위가 이끄는 30명의 수비대가 수촌리를 포위하고 집집 마다 불을 놓아 불길을 피해 뛰쳐나오는 주민들에게 사정없이 총질을 해 댔다. 이 날 수비대의 방화로 민가 24채가 불탔다. 제2차 보복은 발안장터 시위가 있은 4 월 5일 저녁 70여 명의 주민들을 밧줄로 묶어 발안 주재소로 끌고 가서 악랄한 고 문을 가했다. 제3차 보복은 발안주재소장 좌판佐板 과 유전有田의 전 병력을 동원 하여 수촌리 주변 마을 주민들을 집합시킨 다음 주민 130여 명을 발안주재소로 끌고 가 갖은 고문을 가했다. 4월 8일 제4차로 수촌리에 남은 가옥을 불태웠다. 그리하여 총 42채 가운데 38채가 잿더미가 되었다. 이와 같은 탄압은 어은리·주 곡리·석포리·멱우리·금의리·사곡리·독정리·이화리·고온리·덕다리· 사랑리·화산리·호곡리·운평리·원안리 등 여러 동네에 걸쳐 행해졌다. 4월 9일 다시 진촌 津村 헌병특무조장을 책임자로 하여 하사 이하 6명, 경찰 관 4명에 고옥 古屋 수원경찰서장 이하 7명과 보병 15명이 3개반을 편성하여 오 산과 장안·우정면이 있는 화수반도 일대에 대해 대대적인 검거를 실시하였다. 특히 4월 10일부터 11일 오후 5시까지 화수리를 중심으로 부근 장안·우정 면 내 25개 마을을 수색하여 200명을 검거하였다. 이어 4월 15일에는 수원경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