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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65 위를 벌였다. 시위 군중들은 태극기를 들고 군포장(북), 구룡동(서), 반월리·본오 리·범실·들묵 (남) 쪽으로 가면서 만세를 부르다 해산했다. 태장면·안용면·양감면 등지에서 3월 하순 등불과 태극기를 들고 산상에 올라가 봉화를 올리고 만세를 고창하는 등의 시위를 벌였다. 사강반도의 마도 면·송산면·서신면 일대에서는 3월 26일부터 시위가 계속되다가 3월 28일 일 인 순사 1명을 격살하는 등 치열한 시위운동이 일어났다. 팔탄면 발안장에서는 3 월 31일부터 대규모 시위와 함께, 인근 산상에서 봉화시위가 일어났고, 의왕면· 동탄면·반월면 등지에서도 3월 하순부터 4월 초에 걸쳐 시위가 계속되었다. 4월 3일 아침 장안면 사무소에 각 동리별로 주민들이 집결했다. 우정면 주 곡리 주민들이 이치덕·장순명·차봉습·장봉내의 인도를 받아 장안면 석포리 로왔다. 장안면 석포리 주민들도 우정면 주곡리 시위대와 합류하여 장안면사무 소로 향했다. 수촌리 주민의 집결지는 수촌리의 밀양산이었다. 점심 전에 일동 은 독립만세를 연호하면서 장안면 사무소로 갔다. 장안리에서도 전 주민이 동원 되었다. 오전 10시 반경 장안면사무소에 모인 시위군중은 면사무소 안으로 들어 가 장안면장 김현묵에게 시위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였다. 면장이 만세를 연호하 자 시위는 크게 활기를 띠었다. 시위대는 장안면 면사무소의 서류와 집기를 파 괴하고 불태워버렸다. 이어 시위 군중은 쌍봉산으로 이동하여 만세를 부른 후 우정면으로 향하였 다. 당시 시위군중은 1,500명으로 늘어났다. 우정면사무소에 도착한 군중은 면 사무소를 쳐부수고, 비품과 장부·서류 전부를 태웠다. 이후 시위 군중은 화수 주재소로 이동하였다. 주재소에 이르러 시위군중은 일제히 돌을 던지며 공격했 다. 천단 川端 순사는 총격으로 응사하여 장안면 사곡리 이경백 李敬伯이 죽고,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