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page

62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등 서류와 탁자·의자·시계 등 비품을 불태웠다. 그리하여 25일 아침부터 인근 부내면사무소에서 집무를 보고, 27일에 이르러 평온해지자 돌아와 면사무소 인 근 민가를 일시 차입하여 집무하였다고 한다. 역시 같은 보고서에는 면서기 이 경응李敬應이 경찰관헌에게 ‘밀고했다고 오인’하여 시위 군중이 이경응의 집을 습격하여 가옥과 기구 등을 모두 파괴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같은 날인 3월 24일 계양면 장기리 시장에서 오류리 농민 심혁성 沈爀誠이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선도하였다. 이에 300여 명의 장꾼들이 호응하여 만세시위를 벌였다. 오후 5시경 장기리 시장을 순찰 중이던 부내 富內 경찰관 주 재소 순사 이궁희삼차 二宮喜三次 외 순사 3명이 심혁성을 보안법 위반으로 현장 에서 체포하여 끌고 가려 하였다. 이에 많은 군중들이 순사들의 뒤를 따라가며 심혁성을 석방하라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순사들은 이를 듣지 않고 계속 심혁성 을 끌고 가려 하자 장터의 약장수 임성춘 林聖春이 군중들에게 순사를 따라가며 계속 압박을 가하도록 암암리에 신호하면서 심혁성을 순사들의 손에서 탈취하 도록 지휘하였다. 이에 군중들은 더욱 기세를 올리며 순사들을 에워쌌다. 군중 들은 함성을 높이며 순사들에게 압박을 가하면서 한편으로는 순사 몰래 심혁성 의 포승을 풀었다. 이에 순사들은 칼을 들어 휘둘렀고, 군중 속의 이은선李殷先이 칼에 찔려 죽어 넘어졌다. 군중들은 불의의 사태에 놀라 심혁성을 놓아두고 뿔 뿔이 흩어져 달아났다. 이은선의 6촌 친척으로 다남리에 사는 이담 李 墰 은, 이은선의 죽음을 듣고서 순사의 잔혹한 행위에 분노하여 면민을 규합하기 위해 통문을 만들어 면내 각 동리에 회부하였다. 밤 12시경 약 200명의 군중이 계양면사무소에 모였다. 이 자 리에 면서기 이경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담은 이를 분개하여 군중에게 “이경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