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page

58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위행진을 하였다. 3월 28일 아침, 오포면 양벌리陽筏里 유면영柳冕永이 오포면사무소 앞에서 독 립만세를 부르자 시위할 민중이 6백 명이나 모였다. 이때 유면영이 “대한독립만 세!”를 선창하니 군중들도 이에 호응하여 만세를 불렀다. 그는 다시, 군중의 사기 를 돋우어 주고 만세를 부르며 광주군청을 에워쌌다. 3월 28일은 오포면의 정제신·김인택·임무경·유면영이 이끌었던 오포 면의 시위대와 군청 소재지인 경안면 시위대가 연합 시위를 일으킨 날이었다. 오포면사무소 앞에서 출발한 시위대는 오후 2시 경 광주군청 앞에서 시위를 재 개했다. 이 과정에서 경안면을 비롯하여 광주군내 각군 시위대도 합류하였다. 이 들은 군수와 군청 직원들에게 시위에 참여할 것과 군수에게 한국의 독립을 승인 날인할 것을 요구하고 군청과 우체국에 투석하였다. 그리고 시위대가 군청 안 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일제 헌병, 헌병보조원, 그리고 일본 재향군인들과 충 돌하였고, 헌병대의 발포로 6명이 즉사하고 10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3월 28일 돌마면 突馬面 율리栗里 한백봉 韓百鳳은 동리 사람들 1백여 명과 함 께 다음 날 저녁때까지 태극기와 횃불을 들고 만세시위 행진을 계속했다. 이어 4월 6일에는 실촌면 만선리에서 오수식의 주도로 시위가 벌어졌다. 이 날 시위는 오후 5시경에는 약 4백 명으로 불어나 실촌면 사무소에 이르러 면장 으로 하여금 독립만세를 외치게 했다고 한다. 또 만선리를 집결 장소로 정한 것 은 곤지암에서 양평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포 일제강점기 김포군의 관할구역 일부(양동·양서·검단면) 가 해방 후에 각각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