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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8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리 江西里 이헌영李憲永 에게 대하여 ‘자기는 경성결사단決死團 파견원인데, 각지 에서의 독립운동상황을 시찰하기 위하여 파견된 사람이다’고 하여 그 지방의 독립운동상황 및 주모자의 주소 성명 등을 물은 다음, ‘경성에서는 매일 독립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관헌에게 인치되어도 겨우 1일쯤의 검속 처분으로 석 방되니, 동지를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하라’고 권하여 이를 선동함으로써 안녕 질서를 방해한 자이다. 3·1운동 이후 3·1운동 기간에 시위를 벌인 것은 아니지만, 수원군에서 ‘독립신문’과 ‘대한민보’ 등을 배포하고, 또 독립운동을 위한 비밀결사(구국민단)를 조직한 사례가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피고들은 모두 조선의 현재 정치에 불만을 품고 제국(일본)의 굴레를 벗어 나 조선을 독립시킬 것을 크게 바라고 있는 자들인 바, 피고 이종상[일명 : 이득 수] 531) 는 대정 8년 3월 말 경부터 상해에 있는 가假 정부 임원 차관호車寬鎬란 자 와 연락하여 동인 또는 경성부 동대문 안에 거주하는 박성환 朴聖煥[일명一名 : 김 일 金一 ]에게서 보내오는 《독립신문獨立新聞》이라 제한 조선독립사상을 고취 격려 하는 기사를 가득히 실은 인쇄물 수십 매를 동지인 여교사 차인재 車仁載와 함께 동년 8, 9월 경까지 계속 수원군 수원면 내의 조선인 각 집에 배포하고 있었는데, 동년 9월 경 피고 박선태 532) 도 역시 사사로이 상해에 가서 자칭 가정부에 투신 531) 경기도 수원군 일형면日荊面 하광교리下光敎里 342번지 재적·거주, 경성부 정동貞洞 출생[일명 : 이득수李得壽] 학생 이종상 李鍾祥 20세 532) 경기도 수원군 수원면 산루리 111번지 재적, 경기도 수원군 수원면 남창리南昌里 117번지 거주, 학생 박선태朴善 泰 2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