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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한 재판기록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한편 제암리 사건시 순국한 홍원식에 대한 새로운 주장이 있어 주목된다. 충남대의 김상기교수는 「당진 소난지도 의병항전」(『당진 소난지도 의병의 역사적 재 조명』, 충청문화연구소 제1회 학술회의, 충청문화연구소, 2003·11)에서 소난지도 의병대장 은 50세 정도의 홍원식으로 경기도 안성 사람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그를 제암리의 홍원식과 동일인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의병장 홍원식과 홍일초 가 동인일이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앞으로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할 듯하다. 특히 여기서 우리는 화성지역의 경우 충남 당진과 바닷길로 상 호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제암리학살사건에 대한 증언집으로는 전동례 할머니의 『두렁바위에 흐르 는 눈물』 (구술 전동례, 편집 김원석, 뿌리깊은 나무, 1981)을 들 수 있다. 일본측 및 서양 측 문헌자료에 주로 의지하고 있는 입장에서 구술사는 내면적 흐름을 파악하는 데 보다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현재 제암리의 큰말, 넘말, 곡구레미 등에는 학살당한 주민들의 후손 들이 살고 있다. 이들의 증언 또한 당시 집안의 내력, 집의 위치 등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예컨대 큰말에 안경순, 안상용의 후손 안용웅, 곡구레미 에 김덕용의 손자 김명기, 넘말에 김정헌의 아들 김원돈, 안종락의 고손 안효남, 안정옥, 안종엽, 안명순, 안관순의 후손 등이 그들이다. 이들에 따르면, 제암리에 서 학살당한 사람들은 주로 현재 제암리로 알려진 마을의 맞은편에 있는 곡구레 미 거주자들이었다. 안종락, 감덕용, 안정옥, 안종엽, 안명순, 안관순, 김정헌, 안 정옥, 안종엽, 안명순, 안관순 등이 그러하다. 학살당한 홍원식의 부인 묘소는 현재 넘말에 홀로 외로이 남아 있다. 23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