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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연구 동향과 과제 25 제암리사건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연구는 이덕주목사의 「3·1운동과 제암리 사건」(『한국기독교와 역사』 7,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7, 3·1운동과 제암리사건 특집)에 의 해서 이루어졌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 목사는 그의 논문에서 제암리사건의 배 경, 내용, 희생자 등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씨는 사건이 일어난 지 78년이 지났음에도 사건의 정확한 진행 과정과 희생자들의 인적 상황에 대한 연 구가 아직도 미진한 상태라고 지적하고, 기록마다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사건의 내용에 대한 진술들을 객관적으로 검증해 사건의 실체에 보다 가깝게 접근하는 실증 작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씨는 29명으로 알려지고 있는 희 생자들의 정확한 신분과 종교를 밝혀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위해 일 본 경찰측 자료와 선교사 보고 자료, 그리고 생존자의 증언 기록을 종합해서 살 펴보아야 하며 지금까지 소홀하게 취급되었던 천도교측 자료도 참고하고자 하 였다. 또한 지금까지는 민족 ‘수난사’의 의미가 강조되었다고 보고, 민족 저항운 동사 성격을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자 하였다. 씨는 논고에서 고주리에서 희생된 천도교인 6명을 제외한 제암리 희생자 23명은 천도교인 11명, 감리교인 12명으로 나눌 수 있다. 결국 제암리 희생자들 은 천도교와 기독교인들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씨는 제암리사건의 성격을 항일 ‘저항운동’으로 보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고 주장하고, 그 이유로서 이 사건은 우리 민족의 저항운동에 대한 탄압으로 빚 어진 것이며, 사건의 희생자들이 보여준 꾸준한 민족 저항의식을 강조하고 이어 서 농민 중심의 민중 저항운동이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김승태, 일제의 제암리교회 학살·방화 사건 처리에 관한 소고」, 『한국독립운동사연구』30, 2008도 주목된다. 제암리학살을 주도한 일본군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