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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6) 그 주재소로 몰려간 군중은 원곡, 양성 두 면민 약 1천여명으로 구한국 국기 를 손에 들고 선두에 선 남길우는 제2도 나점에 정종두는 그 도면 다점에 서 서 각각 군중의 폭행을 목격했다고 한다. 도면 나점에서 대문 기둥까지는 27 척인데 도면 다점에서는 27척이다. 도면 다점에 서서 바라보니 아카시아 나 무를 심어 만든 울타리 때문에 바라보는데 다소 장애는 되지만 대체로 주재 소 부지는 한 눈에 들어온다. 특히 피해 당시는 아카시아 나무가 싹이 트는 무렵이었으므로 나무 사이로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을 것이다. (7) 그리고 피해 당시는 깜깜한 밤이었지만 횃불 또는 초롱이 있었고, 또 전기 한 주재소의 램프의 불빛 등으로 주재소 부근이 비춰져서 조망에는 불편이 없었다고 한다. * 본 자료에서는 일제 식민통치의 최첨병인 주재소의 위치, 건물 양식, 구조 등에 대하여 정확히 알려주고 있어, 1919년 당시 양성경찰관주재소뿐만 아니라 1910년대 일제의 식민통치를 이해하는데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주민들의 항쟁에 의하여 주재소가 전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본 자료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사항을 인식할 수 있다. ① 주재소의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고 있다. 즉, 동항리의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가는 없고 일대가 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세는 평탄하다. ② 주재소의 모양을 알려주고 있다. 목조기와집, 조선식 건물 평가 1채, 흙담, 대문, 기 둥, 창고, 변소 등올 이루어져 있다. 울타리는 아카시아 나무로 되어 있다. ③ 피해 현황: 주재소 청사는 불타 사라지고, 불에 탄 자국이 있는 주춧돌만이 남아 있 다. 흙담장은 높이 4척 길이 70척인데 여기 저기가 무너져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