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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243 한편 양성초등학교에 보관되어 있는 교직원 명단, 최은식, 고원근 등 학생 들의 학적부 등은 주도자의 면면을 살피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아울러 경 주이씨 족보를 통하여 참여자의 인적구성을 보다 분명히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이들 자료들을 중심으로 원곡 양성 지역 3·1운동의 구체적인 면 모를 밝혀보고자 한다. 원곡·양성지역 3·1운동에 대한 검증조서와 항일유적지 1919년 6월 2일 일제측에서 양성 원곡지역의 3·1운동에 대하여 검증한 내용을 원문을 그대로 살리면서 이해의 편의를 위하여 항목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 과 같다. 검증 참여자 대정 8년(1919년-필자주) 6월 2일 경성지방법원 예심계 직무대리 조선총독부 판 사 三田村富彌은 동 재판소 서기 殿山十太郎, 동 통역생 김영배와 함께 조선총 독부 검사 北村直甫 입회하에 최은식 외 127인에 대한 보안법 위반 등 피고사건 에 대하여 피해현장, 기타를 검증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본측이 인식한 만세운동의 전체적인 개요 1919년 4월 1일 오후 8시경부터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 각 마을의 민중은 그 면 의 외가천리에 있는 원곡면사무소 앞에 모여서 조선 독립시위운동으로 일동이 만세를 부르고, 구한국 국기를 선두에 세우고 만세를 연창하면서 출발하여 도중 원곡면 칠곡리 부근 길가에 서 있는 나무 가지를 꺾어서 그것을 들고 행진하여 원곡, 양성 두 면의 경계를 이룬 고개에 와서 그 마루턱에서 먼저 리유석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