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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235 평리 3·1운동 당시 발안 주재소 자리 소재지: 향남파출소 자리(평리 107번지) 종류: 일제의 침략기구 내용: 화성주민들을 탄압한 중심기구. 1910년 8월 29일 수원군 발안리에 일본군 분견소 설치. 1945년 8월 15일 평리 106번지 일본인 주택 1동을 접수하여 이전 1955년 1월 1일 발안지서를 향남지서로 개칭 1966년 11월 3일 평리 107번지로 이전. 1992년 11월 3일 개축. 참고문헌: 화성경찰서 향남파출소 치안자료(화성경찰소 경무계 소장) 佐坂 거주지 소재지: 평리 106번지. 현재 동림상회 종류: 한인탄압 일본인 거주지 내용: 발안 지역의 거류민 단장으로 활동하던 좌판이길佐坂利吉은 그의 동생 좌판재길佐板才吉과 함께 3·1운동 당시 한인을 탄압하는 데 앞장 선 인물이다. 특히 제암리 및 고주리 학살 사건의 장본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덕주목사는 그의 논문에서, 제암리 사건에 등장하는 사사카는 발안에 진출한 대표적인 일본인 사업가로 동생도 발안에 살았다. 그는 양감면 삼계리에서 간척사업을 하고 있었으며, 3월 31일 발안 장날 만세시위때, 일본인 43명을 삼계리 자신의 사업장으로 피신시켰다. 4월 5일 발안으로 돌아온 후 자신들의 집과 상점이 파괴된 것을 보고, 보복하기 위해 제암리 사건을 꾸민 것으로 보인다. 사사카는 사건 직후 발안을 떠났으나 동생은 해방직후까지 남아 정미소를 경영했다고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