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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233 철저한 보복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이점은 결국 제 암리와 고주리 주민들이 일제에 강력히 저항하였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이기 도 하다. 따라서 앞으로의 연구는 제암리와 고주리지역의 한인희생과 더불어 주 민들의 민족의식의 형성과정과 민족운동에 대하여도 초점을 맞추어 검토가 이 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럴 때만이 제암리 학살사건의 전체적인 모습이 올바로 복원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발안지역의 3·1운동에 대한 보다 깊은 연구가 기대된다. 발안의 3·1 운동은 제암리학살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중요한 사건이다. 특히 3 월 31일 만세시위의 경우 1천 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이정근 의사 등 순국한 인물도 있다. 이 점은 발안지역의 만세운동의 규모와 적극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파악된다. 발안지역 만세운동의 경우 발안지역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간척사업의 추진, 금융조합의 진출 등 일본인의 진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발안에 진출한 일본인 및 수원지역에 진출한 일본 인 및 일본거류민단, 재향군인회 등에 대한 검토 또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본 글은 이 분야 대표적인 연구 업적인 이덕주, 성주현, 이정은, 조규태 그리고 필자의 글을 주 로 참고하여 작성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