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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215 족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는 손병희 등이 중심이 되어 만세운동을 전개하자 이 기회에 동리 사람들과 함께 독립시위운동을 감행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1919 년 4월 3일 자신의 소유인 동리의 밭에서 봉화를 올리고 이민 수십 명을 선동하 여 같이 조선독립만세를 절규하였다. 황재옥은 사법경찰관의 신문조서에서 “금년 3월 1일 손병희 등이 조선독립 을 선언한 후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는 것을 듣고서 자기도 조선독립 을 희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남몰래 기뻐하고 있었다. 더욱이 여주군 개군면 및 대신면의 전반에 걸쳐 독립운동을 시작하였다는 것을 듣고서 4월 3일 거주하는 동리 자기 소유의 밭에 이 동리 사람 4, 50 명을 모아 봉화를 올리고 스스로 선창 하여 조선독립만세를 부른 후 군중과 같이 4, 5번 만세를 외쳤다.”고 상세히 진술 하고 있다. 일제에 체포된 황재옥은 경성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8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일부 기록에 의하면, 북내면의 만세시위가 있던 4월 3일 대신면 곡수 54) 에 서 3,000여 명의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거나, 4월 7일 곡수에서 3,000여 명이 만 세를 부르다가 헌병의 발포로 6명이 피살되었다고 되어 있다. 또한 4월 11일 여 주군 곡수 부근에서 범인 검거 중 폭민 50명이 내습하여 군대 협력으로 진압하 여 폭민 사망 1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개군면에서의 3·1운동 개군면 55) 의 만세운동에 관한 기록은 정확하지 않다. 일제측 기록에 의하면 개군 54) 현재 곡수는 경기도 양평군 지제면 곡수리이다. 55) 개군면은 1963년 양평군에 편입되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