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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금사면 이포에서의 3·1운동 금사면 이포에서는 군내 최다 인원인 3,000여 명의 군중이 4월 1일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포에서 이처럼 대규모의 시위가 벌어진 것은 이곳에 일제탄압의 상 징인 헌병주재소가 있었고, 분노한 군중이 이곳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기 때 문이다. 4 월 1일에는 이포를 비롯하여 인근지역에서 격렬한 시위가 전개되었다. 일 제 조선주차군사령관은 육군대신에게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다. 경기도 여주군내 이포에 약 3천, 안성군내 안성에 1천, 양성에 2천의 군중이 폭행하고 심지어 전주電柱를 불질러 넘어뜨리고 주재소를 불지르고 우편소, 면사무소를 피괴하고 공용서류, 기물을 파괴하는 등 흉포함이 극에 달하고… 4월 1일, 이포 헌병주재소 앞에 운집한 3,000여 명의 군중은 주재소로 쇄 도하였다. 사태의 위급함을 느낀 일본 헌병은 발포를 개시하였고, 주도자 10명 을 체포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이튿날에도 ‘불온한 형세’가 있다고 보고하였다. 이포 헌병주재소에서의 시위는 2일 밤 10시부터 3일 오전 5시까지 계속되었다. 만세운동에 나선 군내 각 면의 군중들은 다시 주재소를 습격하였는데, 헌병들 은 37명의 시위군중을 체포하고도 ‘불온한 징조’가 계속된다고 보고하며 경계 를 늦추지 못하였다. 대신면에서의 3·1운동 경기도 여주군 대신면 윤촌리 140번지에 거주하고 있던 황재옥은 일찍부터 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