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page

208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강영조와 김학수도 이원기의 주장에 동조하였다. 강영조는 26세로, 경기도 여주 군 북내면 외룡리 289번지 거주이며, 김학수는 20세이며,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신남리 246번지 거주자로, 면서기 견습자였다. 면서기 견습 김학수와 북내면 장암리 구장 원도기 집 또한 주목된다. 최영무의 세력은 강만길·최명룡·강영두 등이다. 이들 중, 강두영(북내면 오금리 114번지 농업 강두영 21세) , 최명용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오금리 113번지 농업 최명 용 27세, 일명 명룡(明龍), 석기(石基)) , 강만길(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오금리 114번지 농업) 은 모두 오금리 사람들이다. 이원기·조경호·원필희·이원문 등은 여주군민들이 현재 전국에서 전개 되고 있는 독립운동에 냉담하여 경성 지방 사람들에게 개돼지로 취급되는 것을 분개하여 군내의 각지에 경고, 대거하여 조선독립 시위운동을 함으로써 곁들여 여주 사람의 면목을 세우고자 하였다. 이에 1919년 4월 1일 이원기는 자신이 가 지고 있는 독립선언서를 참고로 하여 “오는 4월 5일 여주 읍내의 장날을 기하여 동 읍내 다락문 앞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할 터이니, 그곳으로 모이라.”는 취지의 문서를 기초하였다. 그리고 조경호·원필희·이원문 등은 이원문 집에서 위의 기초문서에 따라 42매의 경고문을 손으로 써서 이를 이날쯤 각 곳에 배부하였다. 한편 강영조와 면서기 견습인 김학수는 이들의 독립운동 취지에 공명하였 다. 이에 강영조는 4월 2일 이기원 집에서 이원문과 같이 시위운동에 사용할 태 극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김학수는 동월 3일 북내면 장암리 구장 원도기 집에서 이원기. 원필희와 함께 태극기를 만들어 각각 시위운동 준비에 힘썼다. 한편 오 금리에 거주하는 최영무·강만길·최명룡·강영두 등은 이웃 동리인 현암리 주 민들의 요청을 받고 이날 독립시위운동을 할 것을 결의하고, 장암리·덕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