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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업) , 최은식(내가천리, 농업), 이근수(외가천리, 대서업), 이희룡(외가천리, 농업 겸 주막), 이유석 (칠곡리, 서당) , 홍창섭 (내가천리, 농업), 이양섭(죽백리, 농업) 등 7인이 중심적 인 인물로 활동하였다. 이들은 한학자와 농업 겸 주막 경영자 (이희룡) , 배움이 없 는 중년의 농민과 대서인, 안성공립보통학교 졸업 청년 (최은식)들이었다. 특징적 인 것은 최은식은 기독교 장로교 신자였다. 특별히 주목되는 것은 이덕순, 최은 식 등은 3월 1일 이태왕의 국장을 보러 서울에 갔다 귀향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행동대로 참여한 2천여명의 사람들은 대부분 농민들이었다. 원곡 양성지역은 장이 서지 않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농민들이 밤임에도 불구하고 동참한 것은 일제의 수탈과 탄압이 그 만큼 심했음을 반증해 주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넷째, 다수의 인물이 옥고를 치르는 피해를 입었다. 일제는 4월 3일부터 3 차례나 군경을 투입, 검거작전을 등 무자비한 보복을 감행하였다. 401명이 검거 되어, 127명이 옥고를 치루었으며, 40명이 태형을 받았다. 아울러 민가 9동이 소 실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