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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로 그곳이다. 따라서 화성지역의 경우 남한 지역에서 가장 격렬한 항일운동 시 위가 있던 곳으로 판단된다. 그 가운데 우정면 화수리의 경우 일본 순사를 처단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 본 경찰서 주재소를 방화한 유일한 곳으로 특히 주목된다고 할 수 있다. 3·1운동 시 4월 25일까지 일본측 통계에 따르면, 양평, 광주, 괴산, 함안, 남해 등 5개 군 청의 유리창이 파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면사무소 47개소가 파괴 방 화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중 전부 파괴된 곳은 19개소이며, 방화는 5곳, 기타 는 서까래와 기둥만 남겼을 뿐, 전부 파괴되고 서류와 기물도 많이 소실되었다. 아울러 일부 파괴된 곳은 28개소라고 밝히고 있다. 피해를 입은 경찰관서의 경우 45개소인데, 경찰서 4곳, 경찰관 주재소 29, 헌병 분대1, 헌병분대 분견소 1, 헌병분견 주재소 10 곳 등이다. 피해상황을 보 면 전부 파괴된 곳 16개소, 방하는 1곳이며, 기타는 건물, 기물, 서류 전부가 파 괴되고 훼손되었다. 일부 파괴는 29개소이며, 투석 등에 의해 창유리 벽 등을 파 괴하였다. 둘째, 우정 장안 전지역의 주민들이 거의 모두 참여한 만세운동이라는 특 징을 갖고 있다. 당시 우정 장안 지역의 경우 2천 4백여호이다. 그런데 참여인원 은 약간씩 차이는 보이고 있으나 약 2500여명의 참여기록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점을 통해서 볼 때 화수리항쟁은 우정 장안의 전 주민이 참여한 대표적 인 항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석포리, 주곡리, 수촌리 등의 주민들 의 중심세력을 형성하였다. 셋째, 화수리항쟁은 모든 종교세력이 일치단결하여 이룬 항쟁이라는 특성 또한 갖고 있다. 석포리, 주곡리 등의 유교, 수촌리의 천도교와 기독교, 장안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