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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요청하였다. 한규회는 당시 53세로 20년 동안 구장을 해 오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들은 4월 3일 아침 마을에서 다 나와 쌍봉산에 모여라, 만약 나오지 않는 집 이 있으면 오늘 저녁 불을 질러 버리겠다고 했다. 그 후 그들은 뒷산에 올라가서 만세를 불렀다. 또한 그는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마을 뒷산에서 북을 치며 독려 하였다. 주곡리를 중심으로 한 중심인물들을 도표로 작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표2-3-3> 주곡리 거주자로서 3·1운동 참여자 인명 나이 주소 종교 학력 비고 車喜植(車鳳習, 車奉習) 44 주곡리 81 무 무 석포리출생, 1915년 도박죄로 태형 60 張韶鎭(張鳳來) 34 주곡리 무 무 석포리 출생 金興植(金致德) 37 주곡리 83 무 무 수원군 음덕면 茂松里출생 張順明(張濟德) 38 주곡리 53 무 무 수원군 양감면 출생 文春實 41 주곡리 242 무 무 용인군 二東面 墨里출생 장안리의 천주교세력 장안면 장안리 주민들도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들 주민 가운데에는 천 주교, 기독교, 천도교 등 다양한 종교인들이 참여하였다. 그 가운데 특히 주목되 는 것은 천주교 신자들이다. 김선문(안드레이), 김여춘(요셉), 안경덕(가별), 김삼만, 김광옥 (베드로) , 최경팔(도마) 등이 그들이다. 27) 이들 중 김선문은 3대 전부터 천주 교를 신앙해 온 독실한 집안이었다. 김여춘은 7-8년 전부터, 최경팔은 2년 전부터, 김삼만은 부모 때부터 신앙 하였던 것이다. 장안리주민들은 장안리에서 50리 떨어진 성당에 가서 미사를 보 았지만, 당시에는 김선문 집 (장안리 1177번지) 근처에 새로운 교당을 만들어 미사 를 보고자 하였다. 그 교당은 천도교인인 김여춘, 안경덕, 최경팔, 김삼만 등이 27) 천주교왕림교회, 천주교왕림(갓등이)교회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집(Ⅰ), 천주교왕림교회, 1990, 270-271쪽. 1919년 6월 22일자로 김원영 신부가 주교에게 보낸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