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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인명 나이 주소 종교 학력 형량 金黃雲 30 127, 용당골 무 무학 징역 2년 6월 金德根 32 가장말 무 무학 징역 3년 鄭淳榮 53 681,큰말 무 징역 5년 李順模 28/37.8? 69, 꽃밭에 천주교 징역 10년 *국사편찬위원회, 『한민족독립운동사자료집』 19-21등 참조. <표2-3-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수촌리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한 인물은 대 부분 30-50대로 집안 가장들이었다. 체포된 주요 인물들은 김교철을 비롯하여 김흥삼, 김응오 등 주로 가장말 사람들이 많음을 엿 볼 수 있다. 종교는 기독교 감리교인이 다수이며, 학력은 무학자 외에 차인범, 김덕삼, 김종학, 김명우, 김교 철, 김여근 등이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하였다. 차병한, 차희식을 중심으로 한 석포리 유교 토착 세력 차병한 석포리 주곡리 주민들은 거의가 다 유교를 숭상하였고, 대부분 차씨, 장씨 집안 들로 마을을 형성하고 있어 종친 어른의 한마디면 모두들 복종하여 따르는 상황 이었다. 특히 석포리 마을에는 조선시대 ‘이시애의 난’ 때 순직한 강열공의 사당 이 있어 국가에 충성하는 마음을 항상 가다듬고 있었다. 24) 석포리의 구장인 차병한은 당시 35세로 석포리에 사는 차병혁과는 8촌간이었 다. 그는 1913년 2월부터 석포리의 구장이었으며, 13세부터 한문공부를 7년 쯤 하여 통감, 논어, 맹자 등 기본 한학을 공부한 지식층이었다. 차병한은 3월 27 24) 차진한(차병혁의 손자) 의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