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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147 찍이 기독교 신자인 山道의사가 조선인은 일한합방에 대하여 불만을 품고 있 겠지만 다 신의 뜻이라는 것을 들었으므로 이번에 독립이 되고 안되는 것은 신 의 뜻에 따라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라고 하여 신의 뜻에 따를 것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김교철 전도사는 장안면 사무소, 쌍봉산 만세운동, 우정면사무소, 화수리 항쟁 등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그는 화수리 주재소에서 순사가 살해당한 것을 보고 기도를 드렸다고 밝히고 있 다. 이로 보아 그가 일제의 심문에서 직접적으로 독립에 대한 의사를 밝히고 있 지 않으나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던 것이다. 이점은 수촌리 기독교인 들의 만세운동 참여에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수촌리 주민들 가운데 기독교인으로서 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한 인물로는 차인범, 김덕삼, 김종학, 김명우, 김응오, 김응식 등을 들 수 있다. 수촌리에서 백 낙열 이외에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들을 보면 다음 표와 같다. <표2-3-1 수촌리지역 3·1운동 주도자> 인명 나이 주소 종교 학력 형량 車仁範 19 694(2),큰말 기독교, 8세부터 신앙, 14세시 세례 서당에서 한문 징역 10년 金興三 39 가장말 무 무학문맹 징역 3년 金德三 45/42? 573, 가장말 기독교 서당에서 한문 배움 징역 3년 白順益 39 꽃밭에 무 무학문맹 징역 3년 金鍾學 30 68, 꽃밭에 기독교 한문 징역 2년 6월 金明友 34 73, 꽃밭에 기독교 무학, 언문해독 징역 3년 金應五 50 584, 꽃밭에 기독교 무학문맹 징역 2년 6월 金敎哲 41 1881- 1954 577, 가장말 1910년 기독교에 입교, 1916년 남양교회 담임전도사, 1919년 당 시 수천교회와 제임교회의 담임 전도사,( 홍석창 삼인운동사, 195-197). 7세부터서당에서 한문, 1911년 배재학당 입학 1년 만에 졸업 1912년 피어선 신학원 입 학, 1914년 졸업 징역 3년 金汝根 34 128, 용당골 무 서당에서 한문 징역 3년 金應植 44 72, 꽃밭에 기독교 징역 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