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page

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125 홍복룡, 홍열후, 김성우, 홍관후, 김용준, 이성봉 등을 구속하였다. 그러나 중심인 물로 그들이 수괴로 지목한 홍효선, 이태순, 이석춘, 오경운, 예종구 등은 4월 20 일까지 체포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일제는 체포된 사람들에 대하여 혹도한 고문 을 가하였다. 그들을 빨가벗기고 담금질을 하였으며, 잡아비틀고, 입과 코에 냉 수를 드러부었으며, 주리를 틀기도 하였던 것이다. 결국 1920년 5월 홍면옥, 홍준옥, 문상익, 왕국신은 각 징역 12년, 임팔용, 홍명선, 차경현, 김교창, 홍남후, 박군흥, 홍문선, 민용운, 황칠성, 홍관후, 김용 준, 전도선, 정군필은 징역 7년, 최춘보, 오광득, 이윤식, 안순원은 징역 6년을 판 결받았다. 홍면옥 등 17명은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1920년 7월 5일 모두 기 각되었다. 결어 지금까지 1919년 3월 송산면지역에서 전개된 3·1운동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 를 토대로 송산면지역의 3·1운동의 특징을 언급하는 것으로서 결어에 대신하고 자 한다. 첫째, 오늘날 화성지역에서 가장 먼저 전개된 만세운동이 송산리 사강지역 에서 전개되었다는 점이다. 이 운동은 그 후 화성지역에서 전개된 3·1운동의 모 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지식인과 특히 농민주도의 운동으로서 폭력성을 띤 특징을 갖고 있 다. 일본 순사부장의 처단은 그 한 특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 우정면, 장안면 등과 같이 서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운동이란 특성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