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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거하여 투석하였다. 노구찌부장과 일경은 함께 발포하며 길을 열어 남양으로 돌 아가려는 도중 다수의 주민들이 던진 돌에 맞아 노구찌순사가 자전거로부터 떨 어져 도로변에 쓰러졌다. 17) 이때 수백명의 주민들이 다가가서 돌과 곤봉으로 그 를 처단하였다. 18) 3시 30분경이었다. 노구찌 순사를 처단할 당시 주민들은 200-300명 정도 되었다고 한다. 사 강리 거주 홍준옥, 문상익, 임팔룡, 강업동, 왕국신, 박영순, 김치연, 송산면 송산 리 거주 이주선 (송산면 송산리 거주), 마산리 거주 예종구 등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 였다고 한다. 한편 부상을 당한 홍면옥은 장인 김명제에게 닭을 잡아달라고 하여 닭의 고 기를 상처에 약으로 발랐다. 그리고 장인, 임팔용, 홍준옥이 끄는 인력거를 타 고 수원의원으로 오는 도중 수원군 마도면 두곡리에서 순사를 만나, 다시 사강 리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일경은 남양에 돌아온 후 그곳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모아 재차 송 산면으로 만세운동을 진압하기 위하여 돌아왔다. 이때는 이미 만세운동은 해산 된 뒤였다. 주요 구성원 분석 1919년 3월 26일부터 동 월 28일까지 송산면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만세운동 의 참여인원은 기록에 따라 1천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 상당히 넒 은 지역에서 그리고 많은 수의 한인들이 일제에 의하여 가옥이 파손되었고 살 17) 순사부장 사망장소는 수원군 송산면 사강리 동단 사강경찰관주재소로부터 동방 약 63간 (인가로부터 23간) 남양에 이르는 도로변 밭 (강업동 소유임)(21권, 211) , 사강시장에서 남양방면으로 약 2정거리라고 한다. (21권, 262) 18) 일본순사가 처단된 곳은 현재 송산파출소 근처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