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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111 사강리 주재소에서는 3월 26일의 만세사건을 남양경찰관 주재소 순사(竹 內階吉) 에게 보고하였고, 그는 즉시 수원경찰서에 이 사실을 보고하였다. 그리고 동월 27일 오전 8시 순사보 김학응, 조종환과 함께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하여 쌍 송리방향을 지나 사강리로 왔다. 이때 그들은 송산면 사강리 서쪽 육일리 방면에 서 만세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정오경 면사무소 뒤의 작은 산 13) 에 사람 들이 모여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이에 사강 주재소 근무 순사보 장용남과 모두 4명이 그들을 진정시키기 위 해 그곳으로 가자 주민들은 그들이 오는 것을 보고 전부 해산하였다. 이에 일경 도 우선 사강주재소로 철수하였는데 수원경찰서에서 순사부장 (野口廣三)과 순사 보 정인옥이 응원차 왔다. 3월 28일 오전 11시경 홍면옥이 중심이 되어 그의 집 앞뜰에서 홍면옥, 홍 효선, 김창준, 왕국신, 홍태준, 홍문선 등이 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홍면옥은 송 산면 중송리 거주 이규선과 사강리 거주 홍효선 등과 함께 3월 28일이 사강리의 장날이므로 오후 2-3시에 동네 주민들과 사강 시장에 오는 인근 마을 사람들을 모아서 만세를 부르라고 하며 면 사무소 뒷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때 송산면 면사무소 앞, 뒷산 및 그 부근 그리고 사강 주재소 14) 에서 홍문선, 홍남후, 홍승한, 홍관후, 문상익, 이경집, 박춘흥, 민용운, 전도선 등 및 다른 1천 여 명의 군중이 국권회복을 위하여 태극기를 치켜들고 조선독립만세를 불렀다. 태극기 는 약 2척 5촌에서 3척 가량의 흰색 천에 염색을 하였다. 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일본 순사들은 해산을 명령하는 한편 주민들을 설득 13) 현재 송산초등학교가 위치하고 있다. 송산초등학교 구내에는 현재 3·1운동 기념비가 서 있으며, 기념비 옆에 지금까 지 살아있는 소나무 한그루가 옛날의 일들을 증언해주고 있다. 14) 사강 주재소는 과거 송산면사무소 뒤편 도로 부근에 위치하고 있었다.(노구찌 순사부장 사망장소 도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