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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103 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고, 시발점 역할을 하였던 송산면, 서신면 등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우를 범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필자는 본고에서 특별히 송산 면 지역의 3·1운동에 주목하고자 하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우선 송산면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운동의 전통을 3·1운동의 배 경으로 살펴볼 것이다. 이어서 3·1운동의 전개과정을 알아보고 또한 주요구성원 도 분석해 볼 것이다. 여기에서는 특히 학력, 연령, 재산정도, 생활 상태, 종교 등 을 밝혀볼 것이다. 아울러 일본의 탄압에 대하여도 알아보고, 끝으로 송산면 3·1 운동의 역사적 위상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송산면 3·1운동의 배경 사회경제적 상황 송산면은 1914년 일제가 부·군·면 통합 폐합시 송산, 세곶, 수산 등을 합하여 송산면으로 개칭되었다. 남양반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이곳은 15개리 중에서 10 개 리가 바다에 접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토도 풍부하여 농사에 종사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922년 12월 말일 일본측 조사(별첨 <표1> 참조)에 의하면, 송산면의 경우 수원군내 총 206,250 정보의 일모작 논 가운데 5.5%인 11,214정 보의 논이 있었다. 이것은 반월면 (14,678), 안용면(14,159) , 태장면(13,474), 우정면 (13,041) , 향남면(11,135) 다음 순위이다. 논과 밭을 합한 경우에는 전체 수원군내 344,301정보 가운데 송산면의 경우 19,029정보로서 5.5%를 차지하고 있다. 이 것 역시 반월면 (25,115) , 태장면(22,752), 우정면(21,488) , 안용면(21,232) 다음으로 많은 것이다. 이를 통해서 볼 때 송산면은 바다에 접해 있는 지역이지만 많은 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