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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소 尹秉검 1893(고종 3이 ∼ 1919 독립유공자. 이명(異名)은 병소(秉昭). 수원군 음덕면(陰德面 : 현 화성시 남양동) 출신으로 삼일운동 당시에는 수암면 능곡리 182번지에 거주하고 있었다. 1919년 3 월 30일 시흥군 수암면(秀岩面 ; 현 안산시 수암동)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 다. 그는 이해 3월 29일 이봉구(李風求)로부터 동군 화정리(花井里) 일대에, 이튿날 의독립만세운동계획에참가를권하는격문이몰려졌다는소식을들었다.이에그는 3월 30일 오전 10시경, 집합장소인 수암리(秀岩里) 비석거리로 나아갔다. 이곳에서 유익수(柳益秀) · 홍순칠(洪淳七) 등과 함께 18개 동리에서 모인 2천 여명의 대대적 인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와리 (互里) 사람들이 제작한 태극기를 들고 읍내로 시위 행진하며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때 일본경찰이 출동하여 이를 제지하였으나 이 에 굴하지 않고 시위군중과 함께 공럽보통학교 · 경찰 주재소 · 면사무소를 차례로 시위행진하고 자진해산하였다. 그러나 이후 일제의 주동자 일제검거 때 붙잡혀, 10 개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자공훈록(국가보훈처, 1988),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면찬위 원회, 1971),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경기도항일독립운동사(경기 도, 1995). 홍순철 洪淳七 1877(고종 14) ∼ 1932 독립유공자. 안산(安山) 와동 출생. 1919년 3월 29일 시 흥군 수암면(秀岩面) 와리에서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 하여 태극기를 제작하고 주민을 규합하는 등 준비를 갖추 었다. 다음 날인 3월 30일 바럽동(陣立洞)에 집결하기로 하여 주민들에게 통고한 결과 2,000여 명의 군중이 모이게 되자 윤병소(尹秉昭) · 윤동욱(尹東旭) · 유익수(柳益 秀) -김병권(金秉權) · 이봉문(李奉文) 등과 함께 등과 함 께 대열의 션두에서 태극기를 휘두르며 독립만세를 고창 홍순칠초상 | 독립꾼동가 일전 I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