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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열전 유익수 柳益 秀 1870(고종 7) ∼ 1926 유익수묘 독립운동가. 본관은 진주(팝州). 아벼지 는 원형(遠衝)이다. 안산시 부곡동 출생 으로 당시에는 윌피리에 거주하고 있었 다. 3· 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1919년 3월 30일 능곡라 (陸용里)의 윤병 소(尹秉昭), 와리(표里)의 홍순칠(洪淳 七), 화정리(花井里)의 김병권( 金秉 權), 수암리 (秀岩里)의 이봉문( 李奉文), 산현 리 (山l뼈里)의 윤동욱( 尹東旭) 등과 함께 수암면 바석거리에서 인근 18개 동리 2천여명의 주민들을 인솔하고 선두에 서서 읍 내의 향교 · 면사무소 · 보통학교 등을 돌면서 태극기를 휘두르며 조션독립만세를 외 쳤다. 일본경찰이 해산을요구하며 총을쏘려하자흥분한군중들의 시위가과격해지 므로, 폭력의 자제를 호소하여 평화적 시위가 되도록 하였다. 다음날에도 반월면(半 月面) 장날을 이용하여 주민 600여명과 함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곳에서도 시 위가 과격해지자 “건물이나 기물은 우리민족의 재산이묘로 파손하지 말자.”고 호소 하여 평화적 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4월 5일 일본경찰에 붙잡혀 이 해 5월 2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과 소요로 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공소하여 7월 31일 경성복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1년으로 감형되어 서대문형무소에 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6년 여를 명석에서 고생하다가 1926년에 사망하였다. 1983년 정부에서는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 었다. 묘는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 있다. 《참고문헌》 대한민국독립유공자공훈록(국가보훈처, 1 985), 시흥군지(시흥군, 1988), 경기 인물지(경기도, 1991), 경기도항일독립운동사(경기도, 19 95). 42 I 얻구조사보고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