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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어 있는이웃윌꽂리(月 뿜里) 구장 앞으로하언을시켜서 보낸 일이 있다라고하였다. 이 러한과정에서 시위 모의가 일본경찰에 발각되고주모자들은 체포되고말았다.67) (3) 반월면(半月面)지역의 만세시위 반월장터 반월면사무소터 (4) 대부도지역 만세시위 김운규집터 4월 1일 반월면 반월장(半月場)에서 600여명의 주민이 평화시위를 벌였다. 시위 군중은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 른 후 북으로 군포장(軍浦場), 서로 구룡동(九龍洞), 남으 로 반윌리 · 본오리 · 범실 · 들묵쪽으로 가면서 만세를 부 르다가 경찰과 연장이 온순하게 제지하는 바람에 해산하 였다. 수암면 비석거리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던 유익수는 인근 수원군 반월면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그곳으로 가서 반월면 서기와 만나서 어제 수암리에서 시위운동을 할 때 자기가 지휘한 모양을 말하였더니, 그 면서기도 “그 러면 당신께 오늘 지휘를 부탁한다”고 하였으므로 자기는 군중 앞에 서서 폭행 · 협박을 하지 말도록 주의시켜 대한 독립만세를부르고크게 기세를돋군뒤 무사히 해산하여 폭력화되지 않도록 주민들을 설득하여 비폭력 시위로 이 그io-i rl 68) '2. .M - , 3월 31일 대부면(大卓面) 신남리(新南里)에 사는 김윤 규(金允圭) · 노병상(盧秉相) • 홍원표(洪元杓) 등은 영전 리(營田里) 사격장에서 만나 만세시위를 거행할 것을 약 속하고 이날 밤 11시에 김윤규 집에 모여 포목으로 태극 기를만들었으며, 이튿날 4월 1일 오전 3시 경 같이 집 밖 에 나가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이로 인하여 모인 이민 67) 국가보훈처,『독렵운동사자료집』 제5집, 1971, 278∼279쪽. 68) 반월연시위는유익수의 재판 기록에 수암면 비석거리시위가 있던 다음날(3월31일) 자신이 주도하였다고 진술하고 있고, 4월l 일은반월연의 장날로, 반윌장의 시위기록이 있어 두차례의 시위가 있었던 것으로기록되있다.그러나앞뒤 정황을볼때 4월l 얼시위를유익수가주도한것으호추측된다. | 안산지익의 독립끝흉 I 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