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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만세운동피해상황 4월 9일 즈므라 헌병특무조장 지휘로 군인과 경찰이 4월 14일과 16일 송산, 마도, 서신면 의 마을 20여 곳에서 닥치는 대로 군중 175명을 검거하여 폭행 • 구금하고 민가에 방화하였 다. 일본 경찰통계에 의하면 송산면 사강리(가옥 131호중 82호소설, 부상 4명), 붕가(57호 중 47호 소설, 사망 1명), 삼존(40호 소설), 육일(30호 소설), 마산(1호 소설, 부상 1명) 종송 (1호 소설), 마도면 해문(7호 소설, 부상 2명), 서신면 전곡(2호 소설, 사망1명), 상얀(2호 소 설), 3차례의 검거보복으로 3개 면 9마을(211호 소설, 사망 2명, 부상 8명)이 인명과 재산피 해를입었다. 당시 수원군 전체 피해상황은 가옥 소설 328호, 사망 45명, 부상 17명으로 나타난다. 실제 피해는더욱심각했던것으로파악된다 1920년 복심법원에서 소요 및 살인등의 내란죄명으로 흥면욱, 홍준옥, 문상익, 왕광연 4 명은 징역 12년, 엄팔용, 홍명션, 차경연, 김교장, 홍남후, 박춘흥, 홍문션, 민용운, 황칠성, 홍관후, 김용준, 전도션, 정군펼 13명은 정역 7년, 최춘보, 오광득, 이윤식, 얀순원 4명은 징 역6년 형을 판결 받아 1920년 7월 고등법원에 항소하였으나 기각되었다. 핵심 주동자로 수 배를 받은 홍효션, 이태순, 이석춘, 오경운, 예종구등은 체포하지 못하였다. 송산지역 삼일만세운동특정 1. 송산지역 삼일만세운동은화성지역 최초의 만세운동이며, 민주적 비폭력적이었던 삼일 만세 운동과는 달리 폭력을 동원하여 보다공세적으로 펼친 과감한 삼일 만세 운동의 표 상이다. 화성 해안 일대의 농경지, 염전 간척에 따른무자비한 인력 동원, 식량과소금수 탈과같은 일제의 억압이 가중된지역으로 일제에 대한원한이 보다파괴적인 만세운동 으로 결집되었음을 알수 있다. 2. 우발적으로 전개된 만세운동이 아니라, 고종의 인산에 참여한 홍효선과 〈매일신보〉룰 통 해 서울의 만세운동을 인지했던 홍면옥, 홍준옥, 문상익 등。l .A}주적으로 계획 주도한 삼 일만세운동이다. 3. 지식인, 시장상인, 농민들이 합섬 주도하여 화성 전 지역으로 만세운동을 확산시킨 적극 적인 만세운동의 발화점£로 발안장터 만세운동과 장안면사무소, 우정면사무소, 화수리 | 독립만세끔흉 기넘비건립 1133